도정일 - 도서관운동, ‘리드 네팔’에서 배워라


동문기고 도정일 - 도서관운동, ‘리드 네팔’에서 배워라

작성일 2006-11-17

[비판적상상력을위하여] 도서관운동, ‘리드 네팔’에서 배워라

도정일 (영문61/ 13회, 경희대 명예교수,‘책읽는사회’ 대표)

안토니아 노이바우어 여사는 교육학 박사학위를 가진 저술가이면서 ‘자연, 명상, 문화’를 전문으로 하는 어떤 여행사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그 여행사의 이름은 특이하다. ‘신화와 산’(Myth and Mountains)이라니, 여행업체 간판이라기보다는 무슨 책 제목 같다. 이 문화여행사는 미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진 것 같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전혀 익숙한 이름이 아니다. 그런데 그 여행사가 최근 세계에 알려진 것은 여행사 사주 노이바우어 여사가 지난 유월 10일 유엔제정 ‘환경의 날’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지구시민상’을 받고 최근에는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주는 ‘배움의 길’(Access to Learning) 상을 받으면서부터다.

‘지구시민상’은 미국의 한 민간재단이 빈곤, 문맹, 환경 분야에서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상이다. 빌 게이츠 재단이 제정한 ‘배움의 길’ 상은 마땅한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했던 사람들이 교육과 학습의 통로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데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주어지는 상이다. 상금은 백만 달러다. 노이바우어 여사가 이 게이츠 재단 상을 받게 된 것은 그녀가 10여 년 전부터 네팔 오지에서 일으킨 ‘리드 네팔’(READ Nepal) 사업의 공로를 인정받아서다. '리드 네팔‘은, 한 마디로 소개하자면, 네팔의 산골 동네 동네에 작은 도서관을 짓고 이 도서관을 기반으로 해서 사람들이 마을 공동체를 일구어나갈 수 있게 하자는 사업이다. 학교도 없고 책 빌려볼 곳도 없는 네팔 오지에 동네도서관들을 세워 사람들이 자기 교육, 지역발전, 공동체 꾸리기의 세 가지 성과를 올릴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이 사업의 취지다. ’리드‘는 “책을 읽자”라는 소리 같기도 하지만 사실은 ’시골지역의 교육과 발전‘(Rural Education and Development)의 두문자 약어다. 물론 이 약어 명칭이 책읽기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임은 분명하다.

네팔은 세계에서 산이 가장 많은 나라다. 높은 산들의 숫자만큼 신도 많고 언어도 많은 나라가 네팔이다. 2천 8백만 인구의 90 퍼센트가 시골에 살고 그 시골의 절반 이상이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지역이다. 성인 인구의 절반, 여성의 경우는 3분의 2가 문맹이다. 인구의 3분의 1이 빈곤선 이하의 삶에 묶여 있다. ‘리드 네팔’은 1991년 사업을 시작한 이후 15년 동안 산골 동네 동네에 작은 도서관 31개를 지었고 10만부 이상의 책과 신문, 잡지들을 보급해서 50만 명 이상의 네팔 사람들이 문자를 깨치고 자기 교육의 통로를 찾도록 도와주었다고 한다. 모든 도서관에는 성인 독서공간, 여성코너, 청소년 공간, 어린이 코너들이 마련되어 있다.

‘리드 네팔’의 사업 방식은 특이하다. ‘리드 네팔’은 부자 나라 사람들이 가난한 나라 백성들에게 보시하듯 무작정 뭔가를 가져다 퍼주는 식의 사업은 하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서 외부 지원을 받고만 있게 할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도서관 짓는 일에 참여하고 무언가를 기여해서 “우리가 지은 도서관”이라는 자긍심을 갖게 하는 것이 ‘리드 네팔’의 사업 원칙이다. 이를테면 동네도서관을 지을 때 마을공동체는 부지와 초기 비용의 20%를 부담해야 하고 스스로 도서관 운영계획을 짜야 한다. 도서관이 들어올 수 있도록 지역 주민들은 살던 집을 내놓기도 하고 쌀 한 되를 팔아 기부하기도 한다. 도서관이 지어지고 나면 마을 사람들은 방앗간, 문방구, 가구공장 같은 사업을 벌여 도서관 운영비를 마련한다. 부지 선정에서부터 건물 디자인, 건축 관리와 감독, 사서 선출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이 직접 도서관 만들기와 운영을 주도한다. ‘리드 네팔’은 사전 교육과 사후 관리를 돕고 꼭 필요한 부분에서만 물질적 지원을 제공한다.

도움주기는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고 돈만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도움 받는 사람들이 자구와 자립의 의지를 잃고 외부 지원에만 의존하게 하는 것은 일종의 정신적 파탄이며, 이런 파탄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이 모든 종류의 지원 사업에 따라붙는 어두운 그늘이다. 그 그늘 속에서는 자립과 자활의 의지가 생겨나지 않는다. 노약자 등 절대적 지원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자립, 자활, 자치의 능력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 모든 복지사업과 지원사업의 궁극적 목표다. ‘리드 네팔’ 사업이 성공한 비결의 하나는 도움 받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능력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하고 자구와 자립의 길을 스스로 열어갈 수 있게 했다는 데 있다.

노이바우어 여사가 ‘리드 네팔’ 사업에 착안한 것은 15년 전 네팔의 높은 산들을 트레킹할 때였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당시 그를 안내했던 네팔인 청년에게 그는 우연히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네 동네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청년은 “도서관이요”라고 대답한다. 청년은 그저 신문 잡지나 정기적으로 받아볼 수 있는 편이 시설 같은 것을 의미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노이바우어의 머리에 떠올랐던 것은 네팔 산골 사람들의 자기 교육과 마을 공동체 일구기에 기여할 중심 시설로서의 도서관이라는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도서관 기반 지역공동체 건설’이라는 구상이다. 이 구상에 따라 교육발전, 지역발전, 사회발전이라는 ‘리드 네팔’ 사업의 모토가 개발되어 나온다.

“사람이 산을 만나면 위대한 일이 벌어진다”고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노래한 적이 있다. 노이바우어 여사의 구상이 인간과 산의 조우에서 나온 ‘위대한 일’의 반열에 속할만한 것인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배울만한 구상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지금 우리사회도 동네 동네에 ‘작은도서관’을 만들어주는 일에 상당한 정성을 쏟고 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도서관을 만들어주는 일이 그냥 도서관 사업이 아니라 ‘지역공동체 일구기’를 위한 기초 사업의 하나라는 점이다. 도시는 도시대로, 피폐해가는 농산어촌은 또 거기대로, 지금처럼 ‘공동체’가 필요하고 그리울 때가 없다. 그리고 그 공동체 만들기의 기반으로서의 동네도서관은 반드시 지역 주민의 자발적 참여와 자구의 노력 위에 만들어져 가야 한다

- 한게레신문 2006년 9월 2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