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 목표만 내걸린 정책


동문기고 김중수 - 목표만 내걸린 정책

작성일 2006-11-17
[다산칼럼] 목표만 내걸린 정책

김중수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이 높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가는 학계의 오래된 관심사항이다.

그렇다는 것이 정답이겠지만,때에 따라서는 그 관계가 실증적으로 입증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단서가 붙게 마련이다.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은 정치집단이 그렇지 못한 집단보다 국민으로부터 더 신뢰(信賴)를 받을 것이며,이런 정치집단은 본인들을 선택해준 국민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국민의 복리(福利) 증진을 위해 더 열심히 봉사할 것이 당연한데,그렇지 않은 현실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다 같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추구하면서 어떤 정치집단은 경제발전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을 선택하게 되는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투표로 정책을 선택하고 정치인을 뽑는 나라에서 나쁜 의도를 가진 정치인이 등장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좋은 정치인이 나쁜 정책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인가?

향후 20여년 후의 한국경제에 대한 청사진 '비전2030'이 며칠 전에 제시되었다.

읽기만 하여도 기분이 좋은 밝은 미래가 제시되어 있다.

이렇게 희망찬 미래로 이끌고 가겠다는데 왜 기쁨보다는 답답함을 느끼게 될까? 세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째는 과거 정부에서도 '2020' '2011' 등 청사진이 여러 번 제시되었는데 장밋빛만 보여주었을 뿐 장미를 선사하지는 못했었다.

이번에는 무엇이 과거와 달라 장미를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인가? 과거 경험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보이지 않고 과거 비전과의 차별성이 부각(浮刻)되고 있지 않기에 답답함을 느낀다.

둘째,국민에게 인내와 고통을 감내해 달라는 긴장감을 조성하지 못한 것은 비전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고통없이 행복을 기대하는 것은 허상을 좇는 것이다.

국민의 잘못된 사고와 관행을 질타(叱咤)하지 못하고,대내외적 거센 바람을 이겨낼 국민의 강한 정신력을 요구하지 못하는 비전은 국민의 기대감만 부풀려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위험마저 있다.

복지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는 노력을 확대함과 동시에 국민들의 지나친 복지욕구를 억제하는 노력도 병행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또한 국제적 무한경쟁시대에 살면서도 국내의 경쟁여건을 더욱 심화시켜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지 않으니 답답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정책목표가 제 아무리 바람직해도 제약조건이 지나치게 경직적이거나 비합리적이면 목표달성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간과(看過)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성장동력 확충과 인적자원 고도화와 같은 전략을 교육평준화의 틀에서 교육경쟁을 도외시한 채 추구할 경우,결과적으로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고 교육평준화란 제약조건만 유지되는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오랫동안 보아왔다.

무리한 제약조건에 얽매어 옴쭉달싹 못하게 된다는 것은 명료한 사실이다.

목표달성을 위한 여러 정책수단 간 타협(妥協)의 여지도 없게 된다.

경직된 제약조건을 개혁대상으로 삼아야 하는데 이런 조건은 그대로 유지한 채 그럴 듯한 목표를 설정한 비전으로는 아마도 장미를 선사하지 못하게 될 것으로 보이기에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좋은 정치인이 훌륭한 업적을 남기지 못하는 것은 정책목표를 잘못 선정해서가 아니라 시대여건에 뒤떨어진 제도적 제약조건을 개혁하지 못한 데 기인한다.

다시 말해,정책목표는 사라지고 제약조건만 남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교육평준화,수도권 집중,기업에 대한 정부규제 등이 대내외적 시대환경 변화에 적합하게 개혁(改革)되어야 할 제약조건들이다.

국민은 변하는데 지도계층만 과거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옛 서양 속담에 "탱고를 추려면 두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데, 현 정부는 국민과 함께 추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탱고를 추면서 스스로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은 아닐까?

- 한국경제 2006년 9월 1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