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열 - Transporter (전달자)


동문기고 이두열 - Transporter (전달자)

작성일 2006-10-08

Transporter (전달자) 

-- 이두열 (건축77/ 32회, 경희대 건축대학원 객원교수) --

트랜스포터(Transporter). 운반하는 사람, 전달하는 사람 혹은 매체, 수단이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사회의 각 분야에 적용함에 있어서 다양한 성격과 의미를 지니게 된다. 단어의 단순한 뜻 그대로 `물건을 누구로부터 부탁을 받아 누구에게 전달하다'라는 보편적 의미가 있다. 단, 이 경우에 전달자는 지켜야 하는 전제조건이 있다. 전달하는 물건의 내용을 몰래 뜯어보아서는 안되며 내용물의 파손과 변형을 가해서는 안되는 것이 상식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달자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가지고 있다. 국회는 국민의 대변자로서 국민의 뜻을 통수권자 혹은 행정부에 전달하는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단체의, 조합의 집행부는 조합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동시에 그들의 뜻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 신문과 방송, 인터넷 등의 매스미디어들은 국민들에게 상호간 대화의 매체로서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각 개인들은 가족과 가족의 사이에서, 개인과 사회의 사이에서, 또는 사람과 사람과의 사이에서 그와 같은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항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 각 계층의 사람들이 자기한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해서는 안 될 오류를 범하여 왔던 것을 보아왔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전달자가 자기의 역할을 넘어선 행위를 보일 때, 이 사회는 항상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때로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군부독재시절에는 검열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고, 조합과 상대 전달자는 상대하는 집단의 이해관계의 상이성 때문에 많은 경우, 사실 자체의 믿음 보다, 투쟁을 통하여 서로의 신뢰에 상처를 입혀왔던 게 사실이다. 매스미디어의 경우, 있는 사실 자체의 진실 보다, 전달물의 내용을 변형시킨다든지, 자의적 해석으로 그 뜻을 왜곡시킨다든지 하는 행위로 말미암아 항상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국민을 갈등·분열시키는 많은 상황들이 일어나고 있어 가슴이 아프다. 특히 정치에 관련된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사회를 몹시도 분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얼마 전에 겪었던 홍수의 재난 당시, 이 사회가 보여 주었던 슬픔과 사회적 용기에 대한 기억이 있질 않은가. 있는 사실 그대로의 생생한 전달과 그것을 보는 국민들의 아픈 마음과 거기에 대처하는 정치인과 공무원들의 행동에 대한 아름다운 사회적 현상은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네트워크가 정말 잘 운용된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항상 정치적 상황이 되면 관련된 이들 혹은 정치적 이해집단들은 있는 사실을 항상 자의적인 해석을 덧붙이기 시작하고, 집단 이기주의로 모든 상황을 자기들의 집단에 맞춰버리기 시작한다. 사실의 진위 , 왜곡 등 이해관계의 단계를 몇 단계 거치고 나면,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는 문제로 사회적 혼돈을 일으키고 마는 것이다. 이 사회를 이끌고 나간다는 그들의 행태에서는 순수함이라든지, 질서, 규범에 대한 진의를 볼 수가 없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에서 하나님 말씀의 전달자 역할이 되기도 한다. 그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우리들에게 가감 없이 전하고 있으며, 또한 구약과 신약을 통하여 많은 이들이 있었던 사실 그대로 전한다. 그것이 지금의 이 시간에서도 여전히 많은 이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바로 모든 사실을 가감없이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바로 생명력이 있고, 감동이 전달되는 것이다. 그것은 비단 성경의 얘기 뿐 만이 아니라, 진실을 왜곡없이 전달하는 모든 사실에 바로 문제의 근원을 풀 수 있는 열쇠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금 이 시간 우리 사회의 건전치 못한 사회적 문제를 만들어내는 그들, 그들은 스스로 이 사회의 지도자계층 혹은 오피니언리더라고 스스로 칭한다. 문제는 이들에게 주어진 온전한 역할을 하는 순수한 모습이 없는 것이다. 이들에게서 정말 묵묵히 이 사회에서 트랜스포터로서 자기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는 모습을 보길 기대한다.

- 경인일보 2006년 8월 25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