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규 - 야스쿠니 참배 이래서 문제다


동문기고 김찬규 - 야스쿠니 참배 이래서 문제다

작성일 2006-10-08

[특별기고―김찬규] 야스쿠니 참배 이래서 문제다

김찬규 (경희대 명예교수·국제법)
 
한·중 양국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 15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결행했다. 그의 신사 참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는 사실 자체에 있고 다른 하나는 8월15일에 했다는 사실에 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전몰 장병의 혼이 봉안돼 있는 곳이지만,동시에 2차대전 때의 A급 전범 14명이 합사(合祠)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2차대전 때의 A급 전범 14명이란 전쟁 후 도쿄에 설치되었던 극동국제군사재판소에서 ‘평화에 대한 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자들 가운데 교수형을 당한 7명과 복역 중 사망한 7명 등 전쟁을 지휘한 지도부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들이 합사돼 있는 곳에 일본 총리가 참배한다는 것은 표면적 명분 여하를 불문하고 그들을 기리는 것이 되고 그것을 통해 2차대전에 대한 일본의 책임에 면죄부를 주는 결과가 된다. 양식 있는 일본인을 포함해 2차대전의 피해자였던 세계 전체,그 가운데서도 특히 한·중 양국이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한사코 반대해온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8월15일은 일본이 항복한 날이자 우리에겐 광복일이어서 엄청난 상징성을 가진다. 고이즈미 총리가 2001년 4월18일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 때 총리에 취임하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8월15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겠다고 공약한 일이 있는데,하고 많은 날 가운데 하필 8월15일이라고 한 것은 이날이 가진 상징성 때문이다. 고이즈미가 총리 취임 후 매년 신사 참배를 강행해 왔지만 8월15일에 하지 못했던 것은 이날이 가진 상징성에서 오는 거센 반발 때문이었으며 이번 참배에 한·중 양국이 더욱 격앙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한·중 양국의 반발에 대해 고이즈미 총리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에게 총리가 머리를 숙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당연한 일에 타국이 용훼함은 내정 간섭에 해당한다”고 역공했다. 그의 참배가 과연 당연한 일이며 이에 대한 용훼가 내정 간섭에 해당하는 것일까?

문제가 되는 것은 야스쿠니 신사에 2차대전 A급 전범 14명이 합사돼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전쟁 후 ‘평화에 대한 죄’,다시 말해 침략전쟁을 계획·준비·개시 또는 실행,혹은 이러한 행위 중 어느 것을 달성하기 위한 공동 계획 또는 공동 모의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이다. 그들은 국제범죄를 저지른 자들이며 국제범죄인들에게 일국의 총리가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는 것은 그 나라가 범죄국가가 아니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이 문제는 내정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중대한 국제적 관심사항이라고 봐야 한다.

일본은 극동국제군사재판소가 전승국 국민만으로 구성되었고 적용 법규가 사후입법이었다면서 재판의 공정성 및 판결의 유효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이의는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재판에서는 피고의 입장이 소명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고 또한 1차대전 후 독일 황제에 대한 전쟁 책임 추궁이 있었기에 2차대전 후 일본의 전쟁 지도자들에 대한 책임 추궁을 사후입법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여건에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어떤 구실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다. 그것은 일본이 침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낳을 뿐이다.

- 국민일보 2006년 8월 1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