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준 - 개인파산 폭증을 막으려면


동문기고 권영준 - 개인파산 폭증을 막으려면

작성일 2006-10-02
[시론] 개인파산 폭증을 막으려면

권영준 (경희대 교수 경영학)

개인파산 신청이 올해만 벌써 5만명에 육박해 작년 동기대비 3.6배라는 엄청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개인파산 신청이 급증한 이유는 크게는 경제구조적 문제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채무자 구제제도의 허점 때문이다.

경제구조적 문제는 다시 세 가지로 분석될 수 있다. 첫째, 외환위기 직후 정부의 잘못된 내수 확장용 신용카드정책으로 카드대란(大亂)을 겪으면서 384만명(2004년 4월 말)이라는 우리 경제가 감당하기 힘든 신용불량자가 양산되었다. 둘째는 2003년 참여정부 출범 초부터 본격화한 내수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서민경제가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셋째는 은행 등 제도금융권이 외면한 한계 신용등급자(신용불량자 직전 단계)들이 사채시장을 전전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개인 채무자 구제제도는 사실상 개인파산이 유일한 제도였다. 그러다 신용불량자가 대거 양산되자 정부는 선진국이 활용하는 각종 신용회복제도를 졸속으로 도입했다. 먼저 2002년 10월 민간 금융기업들의 협약하에 신용회복위원회(정부 산하기관)가 주관하는 개인워크아웃 프로그램이 가동됐다. 이어 2004년 9월에는 법원이 주관하는 개인회생제도가 시행됐고, 2006년 4월에는 통합도산법이 만들어졌다. 이런 제도들이 한꺼번에 시행되면서 외형적으로 신용불량자는 100만명 정도 줄었다. 하지만 이 제도들이 채무자들의 재기(再起)를 실질적으로 돕지 못해 개인파산은 크게 늘었다. 브로커들이 수수료를 노리고 채무자들의 파산을 부추기는 것도 급증의 원인이다.

결국, 이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한 근본대책도 원인진단과 맥을 같이할 수밖에 없다. 우선 경제구조적 원인에 대한 처방으로는 첫째, 다시는 정치논리가 경제를 악용하는 카드대란과 같은 우민정책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금융감독기구의 정치적 중립화 같은 환골탈태적 발상이 요구된다. 둘째로 성장잠재력 확충과 아울러 성장의 과실이 내수(가계 소득증가)로 직결될 수 있도록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사회안전망을 확대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어야 하다. 셋째는 외환위기 이후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제도권 금융시장에서 완전히 퇴출되어 있는 한계신용등급의 서민들이 생계형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대안(代案) 금융기관의 설립을 정부 주도로 적극 나서야 한다. 이미 우리보다 신용등급이 훨씬 뒤떨어진 국가인 방글라데시에서는 그라민뱅크(Grameen Bank)를 통해 농촌의 빈곤 여성을 대상으로 자금을 빌려주는데, 상환율이 99%에 이를 정도의 성공사례가 됐다. 프랑스 경제활동권리연합(ADIE)은 연 6%의 낮은 금리로 실업자, 저(低)신용자를 비롯한 사회 취약 계층을 지원하며, 미국 액시온(ACCION)은 청년창업자를 대상으로 5만달러까지 대출해 주는 등 대안금융기관이 양극화해소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끝으로 이미 도입된 채무지원제도 시스템전반을 하루속히 보완할 필요가 있다. 현재 법원에서 취급하는 개인회생이나 개인파산의 경우에는 인력부족으로 구체적인 심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인정률이 높다. 이를 부추기고 비용까지 채권자에게 전가시키는 일부 브로커형 변호사와 법무사들이 제도를 악용하는 모럴해저드 현상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취약점을 보완하려면 법원의 개인회생이나 개인파산 신청에 앞서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 프로그램을 반드시 거치게 하는 전치(前置)주의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

- 조선일보 2006년 8월 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