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최혜실 - 유비쿼터스 시대의 도시 공간
유비쿼터스 시대의 도시 공간
최혜실 (경희대 교수·국어국문학)
근대 도시의 구성은 일목요연하다. 주거지와 사무실, 상가, 휴양지의 구분이 엄격하고 구역과 구역 간의 도로망이 잘 짜여 있다. 사람들은 아침에 집을 나와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일을 하다 저녁이 되면 다시 집에 돌아간다. 퇴근길에 상가에서 물건을 사거나 술 한잔 하는 일도 있다. 휴일에는 집을 나와 산과 강으로 가거나 유원지를 찾아 여가를 즐긴다. 즉 일하는 시간과 공간, 노는 시간과 공간이 잘 구분되어 있다.
이런 공간 구성은 집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각자의 침실이 있고 가족이 모여 노는 거실이 있다. 부엌에서 요리를 만들어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서재나 음악 감상실이 따로 있으면 더 좋다.
이런 방식은 옛날 한국인의 공간 활용과 참 다르다. 안방에 밥상을 놓으면 식당이 되고 상을 치우고 책을 놓으면 서재가 된다. 책상을 치우고 TV를 켜면 거실이 되고 이불을 펴면 침실이 된다. 그뿐이랴! 큰 함지박을 안방에 들여놓고 물을 받아 몸을 씻으면 목욕탕이 된다. 요강을 가져다 놓으면 화장실도 된다.
그런데 어느 사이에 이런 다양한 공간 활용은 궁벽함과 비합리성의 상징이 되었다. 한 공간이 하나의 기능을 지닌다는 근대적 공간 개념은 이 다기능 공간을 가난하고 좁은 집, 많은 아이들, 된장찌개 냄새와 오물 냄새가 범벅이 되어 있는 비위생적인 공간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그런데 최근 유비쿼터스 기술은 용도에 따라 공간을 구획하는 합리성에 강력한 도전을 하고 있다. 지하철은 목적지까지 가는 교통수단이다. 그러나 MP3로 음악을 들으면 음악 감상실이 되고 DMB로 스포츠 중계를 보면 거실이 된다. 모바일폰은 전화에서 시작했지만 그것으로 친구와 수다를 떨면 놀이공간으로 변하며 게임을 하면 게임방이 된다. 또 주식투자를 하거나 은행계좌로 송금을 하는 등 업무 처리를 하면 일터로 바뀐다. GPS를 활용하면 내릴 지하철역의 교통 상황을 알 수 있다.
이제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에서 전자 공간과 중첩되면서 증강 현실(augment reality)로 바뀐다. 지금 이 지하철 공간에 육체적인 내가 앉아있지만 실제 내가 통화하고 있는 사람은 미국에 있다. 저 멀리 떨어져 있던 공간이 삽시간에 내게 다가와 연결된다.
근대 도시 공간의 특성은 무엇이던가! 하루 종일 가야 아는 사람 하나 만날 수 없었던, 그 고독한 익명(匿名)의 공간이 새로운 기술에 의해 내가 보고 싶은 사람과의 소통으로 인해 친밀한 공간으로 변모한다. 합리성과 이성, 목적성이 횡행하던 도시공간은 모바일 화면 안의 예쁜 캐릭터와의 게임에 의해 놀이공간, 환상의 공간으로 변한다.
유비쿼터스 기술이 만들어낸 공간의 혼재(混在)를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아니, 21세기 도시는 이제 공간 계획의 리모델링에 돌입해야 하지 않을까? 길거리에서 휴대폰으로 전자결재가 이루어지고 계좌이체가 이루어진다면 재택근무가 활성화될 것이고 유러닝(U-learning)이 뜨면 학교나 학원가가 축소되지는 않을까? 전자 구매가 활발해지면 현실공간의 상가 또한 축소되지 않을까?
- 주간조선 2006년 8월 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