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임성호 - 전당대회가 축제의 장이 되려면
<포럼> 전당대회가 축제의 장이 되려면
-- 임성호 (경희대 교수·정치학) --
전당대회는 흥겨운 축제의 장이 될 때도 있고 심각한 결전장이 될 때도 있다. 전자가 당의 내부 단합을 다지고 바깥으로 지지세 를 넓히게 해주는 데 비해 후자는 내부 분열을 심화시키고 대외 이미지를 추락시키기 쉽다.
축제로서의 전당대회는 미국에서 4년마다 볼 수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각기 대통령 후보와 부통령 후보를 확정하고 강령을 통 과시키기 위해 전당대회를 연다. 온갖 풍선과 기념품이 분위기를 북돋우고 대의원들은 페스티벌에 온 듯 간편한 복장과 때론 우 스꽝스러운 모자와 갖가지 배지로 치장한 채 대회장을 휘젓고 다 닌다. 연사들의 말끝마다 박수로 호응하며 구호를 따라 외치고 노래를 합창하기도 한다. 연설에는 관심 없이 삼삼오오 모여 정 담을 나누기도 한다. 대의원들의 얼굴에서는 긴장감을 찾아볼 수 가 없다. 소풍 온 아이들이 따로 없다.
이처럼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유대감과 단합을 다지고 당 지 지자로서의 정체성을 재확인한다. 일반 대중에게는 당의 멋진 모 습을 보이며 지지를 호소한다. 4년에 한번씩 평소 느슨한 당 조 직에 내적 추진력을 제공하고 외적으로 지지세가 탄력을 받게 해 준다는 데서 미국 전당대회의 중요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후보 결정이나 강령 통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축제화(化)를 통한 정치적 기능이다.
미국에서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보스정치가 각 정당을 지배 했던 19세기 당시 전당대회는 으레 몇몇 지역 맹주간의 치열한 대결과 복잡한 비밀 거래를 통해 결과를 내곤 했다. 물론 돈과 자리가 정치 거래의 주요 수단이었다. 담배연기 가득한 방에서 부패한 정치보스와 브로커들이 부정한 흥정을 하는 모습은 축제 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늘날 미국에서의 전당대회가 축제로 발전하게 된 것은 국민이 별 제약 없이 참여할 수 있는 투명한 예비선거 덕택이다. 전당대 회에 앞서 수개월에 걸친 예비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으로 이미 후 보자가 결정되므로 전당대회가 심각한 결전장이 될 이유가 없다.
대의원들은 이미 확정된 대통령 후보가 누구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할지 호기심을 갖고 지켜보면 된다. 또한 예비선거 기간에 여러 정책 쟁점에 대한 토론이 충분히 진행되므로 강령 채택에도 큰 충돌이 생길 리 없다.
반면 우리나라 각 당의 전당대회는 격렬한 투쟁의 이미지로 각인 돼 있다. 최악의 경우엔 각목싸움, 폭력배 동원으로 난장판이 된 적도 있다. 그렇게 살벌하지는 않더라도 인신공격과 집단 각축 과 줄서기가 심해 두고두고 감정의 앙금을 남기는 것이 보통이다 . 내부 단결과 외연 확장의 기회가 되는 축제로서의 전당대회와 는 정반대로 당이 더욱 분열하고 국민의 불신이 더 깊어지는 계기 가 되기도 한다.
어제 한나라당 전당대회가 있었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당대표를 뽑는 행사였던 만큼 큰 긴장감 속에 매우 치열하게 치러졌다. 대선후보 간의 대리전이니 , 색깔논쟁이니, 전력시비니, 동원의혹이니 말이 많았다. 감정의 골이 깊어졌을 것이다. 그 앙금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면 앞으 로 당의 단합과 세력 확장엔 암운이 드리워지는 셈이다.
우리 정치도 흥겨운 축제로 승화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미국에 서처럼 보다 많은 국민이 투명하게 참여하는 과정이 제도화돼야 한다. 전당대회가 극소수 당원만의 행사가 되거나 여론조사라는 엉성한 고육책에 의존하지 않도록 긴 기간에 걸친 적극적 국민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비록 대선후보가 아닌 당대표 선출이나 그 밖의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든 전당대회를 투명하고 참여 적인 정치과정의 최종 단계로 만들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 야 정당이 소수 정치엘리트의 손을 벗어나 국민의 것이 될 수 있 다. 정당과 국민 모두를 위한 길이다.
- 문화일보 2006년 7월 1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