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우석 - 해외정보 수집·관리 국가가 나설 때


동문기고 공우석 - 해외정보 수집·관리 국가가 나설 때

작성일 2006-09-27

[사이언스 리뷰]해외정보 수집·관리 국가가 나설 때

-- 공우석 (지리76/ 31회, 경희대 교수·지리학) --

최근 북극에서 1000㎞ 떨어진 북극해에 있는 노르웨이 섬인 스피츠베르겐에서 ‘국제종자저장고’ 착공식이 있었다. 축구 경기장 절반 규모의 저장고에는 쌀, 바나나, 코코넛, 양귀비 씨앗 등 모두 200만종의 종자를 보관하는 ‘현대판 노아의 방주’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북극권의 영구 동토층에 종자 저장고를 만드는 건 만약에 있을지도 모르는 소행성과의 충돌, 핵전쟁, 생물전쟁, 지구온난화 등에서 생명의 씨앗을 지키려는 의지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선진국의 주도면밀함에 느끼는 바가 적지 않다.
오래 전부터 서구열강들은 다른 나라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져 왔고, 영토확장을 통한 자원 수탈을 위해서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러한 정복의 역사를 미화할 가치조차 없지만 이들 식민종주국들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어떤 대비를 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우리에게 귀한 교훈이 될 수 있다. 다른 세계 탐험에서 성패를 결정했던 사람들은 정치·행정가나 총칼을 든 군인들이 아니었고,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중요성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지질학, 지리학, 생물학, 언어학, 고고학, 민속학 등 순수학문 분야의 전문가들이었다. 이들이 조사한 기초정보들은 뒤에 식민지를 개척하는 데 결정적인 자료로 활용되었다.

기초학문을 강조하는 식민종주국의 이러한 전통은 아직까지 이어져 1926년부터 1989년까지 재위한 일본의 히로히토 국왕은 해산식물 연구 권위자였고, 1926년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스웨덴의 구스타프 왕자도 고고학에 일가견이 있었다. 영국의 왕세자 찰스는 유기농업 지식을 사업으로까지 발전시켰으며, 아들인 윌리엄 왕자도 대학에서 지리학, 생물학 등을 전공하였다.

반면 우리 사회에서 명망있는 계층의 자제들과 우수한 인재들이 하나같이 경영학, 법학, 의학 등 사회적 대우가 보장되는 영역에 편중되어 있는 현실이 아쉽다. 이 마당에 새삼스레 비난받아 마땅할 식민제국 건설의 망상을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국토가 좁고 자원이 부족해 해외시장을 끊임없이 개척해야 하는 우리가 외국과 북한 정보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체계적으로 관리해 왔는지 되돌아볼 때이다. 1964∼73년에 연인원 32만명의 우리 젊은이들이 월남전에 파병되어 피와 땀을 흘렸고, 1999∼2003년까지 동티모르에도 전투병이 파견되었으나 이들 국가에 대한 체계적인 기초정보를 정리한 변변한 책자나 지역전문가조차 없는 실정이다. 91년 걸프전 때 쿠웨이트에 비전투병력, 93년 아프리카 소말리아에 평화유지군, 94년 서부 사하라, 그루지야, 인도-파키스탄에 평화유지군, 95년 앙골라, 2002년 아프가니스탄, 2003년부터는 이라크에 자이툰부대를 포함한 많은 병력이 파병되었다. 해당국을 바르게 알고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군인 외에 분야별 전문가들이 참여했다면 여러 모로 유익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선진국의 정보기관이나 종합상사들의 정보력은 국력의 지표가 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우리의 유학생, 상사원, 한국국제협력단 봉사자, 선교사, 여행객 등 한국인의 발길이 지구촌에 닿지 않는 곳이 없는 현실에서 이들이 파악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모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루라도 빨리 우방에 정보를 귀동냥하는 현실에서 벗어나 북한과 세계 각국을 바르게 이해하고, 국익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국가별 기본 정보 수집사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책임있는 기관이 앞장서 각계 전문가들과 관계자를 활용해 관련 정보를 수집·관리·활용하는 국가적 프로그램을 만들 때이다.

- 세계일보 2006년 7월 1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