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룡 - 우리교육의 문화·정서와 교육개혁


동문기고 송재룡 - 우리교육의 문화·정서와 교육개혁

작성일 2006-09-27

우리교육의 문화·정서와 교육개혁 

-- 송재룡 (경희대 사회과학부교수) --
 
노무현 대통령의 김병준씨 교육부총리 내정을 두고 야당과 교육관련 단체들의 반대 성명들이 줄을 이었다. 개각에 따른 의례적 반대 성명일 수도 있지만, 김 내정자가 교육정책 분야에서 일해본 적이 없는 비(非)전문가라는 점과 부동산 정책 추진과 관련해 “`세금폭탄'이라고 썼던데 아직 멀었다”고 한 과거발언으로 인한 `부정적 낙인'이 주된 반대의 이유다.

필자는 여기서 김병준씨의 교육부총리 내정과 관련, 옳고 그름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 이런 유의 반대 논란이나 이에 맞서 제시되는 개혁의 언설들이 때때 마다 매체를 장식하는 이벤트나 장식품 정도의 의미밖에 가지지 못한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김 교육부총리 내정자 아닌 그 어떤 이가 임명이 된다 한들 우리의 교육 문제가 금방 풀릴 수는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는 그동안 셀 수 없이 거쳐 간 교육(인적자원)부의 장·차관들이 제시했던 용두사미형 교육개혁 청사진들에 식상했기 때문이 아니고, 그동안 관행적으로 취해 온 전형적 교육개혁 해법의 한계가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역대정부가 취해온 교육개혁의 조치들은 제도·시스템적 해법에만 맞춰져 왔다. 관련 모델을 참고한 제도적 장치와 프로그램을 신설, 수정·보완하거나 아니면 대안적 제도나 시스템을 도입해 추진해 왔다. 지난 수십 년 간 유행했던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라는 말은 이 경향을 잘 대변한다. 국소적 효과를 전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왜곡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우리의 과열된 교육 현상을 볼 때 이 해법이 가지는 한계는 두 말 하면 잔소리다.

이제는 그동안 의존해온 제도·정책적 해법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육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왜 끊임없이 되풀이 되고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 있어야 한다. 이 해법의 의지를 뒤틀리게 하고 결국 개혁을 좌절시키는 우리 교육의 문화·정서적 차원이 가지는 심각성을 고찰해야 한다.

여기서 지난 2004년 6월 OECD 교육검토단의 한국교육 보고서를 보자.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강도 높은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강박감을 갖는다. …한국 사회에서의 지위는 종국적으로 대학에 들어가는 것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부모들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기울여 자녀를 대학에 보내려고 애쓴다. 대부분의 경우, 자녀가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가족의 절대명제가 되며,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곧바로 이를 위한 행동이 취해진다'. 짧은 문장이지만, 교육과 관련된 문화·정서적 가치와 태도를 포착한 의미심장한 내용이다.

얼마 전 필자는 조기교육을 받고 있는 만 6세 어린이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적이 있다. 스스로 `바쁘게 산다'고 말하는 그 어린이는 조기교육이라는 명목하에 매일 매일을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유치원을 포함해 여러 개의 사설학원을 오가는 고단한 삶을 살고 있었다. 조기교육이라는 허울을 쓰고 있지만, 사실 이 어린이는 우리 사회와 부모에 의해 벌써부터 10여년 뒤에 벌어질 명문대학 진학을 위한 경쟁의 게임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는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얘기다. 자녀를 교육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와 같은 교육 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 스스로 이 교육적 현실의 심각성을 잘 안다. 학부모도 알고, 선생도 알고, 심지어 피교육자인 학생들까지 안다. 하지만 문제는 만인이 인정하는 그 문제를 풀지 못하고 어찌 할 바를 모른 채로 우리 모두가 수 십 년간이나 질질 끌려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왜곡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과열된 교육열로 표현되는) 집합적 경향인 것이다. 사실 이 집합적 경향은 교육이라는 탈을 쓴 채로 전 국민을 집합적으로 몰아가는 출세와 성공 지향의 강력한 문화적 또는 정서적 경향을 말하는 것이다. 이 강력한 문화·정서적 자장(磁場)안에는 피교육자인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와 교사가 함께 얽매여져 있다. 우리의 교육 개혁의 성공은 바로 이와 같은 교육 지향적(집착적) 삶을 추동하고 있는 문화·정서적 가치와 정신의 역동성에 대한 통찰을 필요로 한다.

- 경인일보 2006년 7월 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