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권영준 - 구성(構成)의 오류
구성의 오류
-- 권영준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 --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폴 새뮤얼슨의 명저 ‘경제원론’의 첫 장은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구성의 오류’가 가장 먼저 등장한 이유는 아마도 경제정책을 수립하는 데 본래의 의도와 다르게 결과적으로 오류를 범하는 경우를 가장 경계하라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구성의 오류는 어떤 원리가 부분적으로 성립해도 전체적으로 성립하지 않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성립한다고 추론함에 따라 발생하는 오류를 뜻한다. 예를 들면 배추농가의 소득이 배추수확량이 증대할수록 늘어난다고 추론하는 것이다. 만약 배추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로 한 농가의 수확량만 늘었다면 이 추론은 옳지만, 날씨 등의 영향으로 모든 농가의 배추수확량이 증대되면 결국 가격이 폭락하여 모든 농가의 소득이 감소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구성의 오류이다.
국가 물류산업의 선진화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YS정부부터 수십 조 원의 엄청난 돈을 들여 건설한 고속철도 KTX가 오히려 지방경제를 죽이고 있다는 원망을 듣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구성의 오류로서 정책의 결과가 의도와 반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고속철도가 생기면 2000만 수도권 인구가 지방으로 더 자주 내려가서 관광도 많이 하고 서울과 지방 사이에 교류도 더욱 활발해져서 지방경제가 활성화될 것으로 홍보도 많이 하고 기대도 많이 했었다.
그런데 막상 개통이라는 뚜껑을 열고 보니, KTX를 서울 사람만 타는 것이 아니라 지방주민도 타고 오히려 문화와 소비상권의 격차가 너무 큰 현실 때문에 지방의 여유 있는 소비계층이 전보다 훨씬 더 많이 서울로 자주 와서 다양한 문화서비스와 고급소비를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방상권이 겪는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경제학자들은 정책집행 과정에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정권의 정체성을 걸고 추진했던 부동산대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일종의 구성의 오류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역균형발전의 정책목적을 갖고 추진하는 혁신도시, 기업도시, 행복(행정중심복합)도시들로 인해 지방 토지가격들이 엄청나게 급등했는데 이로 인해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서울 강남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토지수용으로 보상을 받은 사람 중 상당수가 그 돈으로 강남의 아파트를 사는 바람에 강남아파트 가격이 더 올라가는 구성의 오류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5.31 지방선거가 여당의 전패로 끝이 났다. 그런데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정부가 또 다시 구성의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경제문제와는 거리가 먼 법무부가 이자제한법(최고금리 연 40%)의 부활이라는 경제관련 법을 추진하려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 법 부활의 의도는 서민들을 고리대금업자로부터 보호하자는 선량한 취지이기 때문에 반대할 명분이 없어 보이나, 감독의 사각지대를 해결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법만 부활시키면 결국 현 대부업법에서 규정한 연 66% 내에서 사채를 이용하는 서민만 사채업자들의 호구로 밀어 넣는 부작용만 생기게 되므로 감독이 정상화될 때까지 중지해야 한다. 이제 대통령의 임기도 1년 반밖에 남지가 않았다. 이제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려고 또 다른 오류를 범하지 말고 현재까지 계획했던 정책들을 차분히 마무리 짓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 주간조선 2006년 7월 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