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현 - 꼭짓점댄스에 비춰 본 자화상


동문기고 허동현 - 꼭짓점댄스에 비춰 본 자화상

작성일 2006-09-22

[문화마당] 꼭짓점댄스에 비춰 본 자화상

-- 허동현 (경희대 외국어대학 교수) --
 
올해 6월 붉은 물결이 휘몰아치던 거리와 광장에서 우리는 또 한 번 행복했다. 지난 2002년에는 “대∼한민국”을 목청껏 외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지만, 올해엔 여럿이 얼려 추는 꼭짓점 댄스가 하나됨의 기쁨을 더해주어 거리 축제가 함께함의 열정으로 불타올랐다. 영화배우 김수로가 월드컵이 열리기 얼마 전에 선보인 이 집단 춤은 삽시간에 국민댄스로 진화해 우리 사회를 그 열기 속으로 한달음에 몰아넣었다.
한 사회나 집단의 오늘을 반영하는 사회문화현상으로 집단 춤은 다른 시공간의 그것과 비교할 때 그 현재적 함의(含意)가 오롯이 드러난다.2000년대 초반 일본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파라파라 댄스와 꼭짓점 댄스는 집단으로 춤춘다는 점에서 외견상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발의 움직임이 거의 없고 현란한 손동작을 특징으로 하는 여성적인 파라파라 댄스에 비해 전후좌우 360도 돌면서 다이아몬드 스텝에 따라 발을 힘차게 내지르며 열린 하늘 높이 동서남북으로 손가락을 찔러대는 꼭짓점 댄스는 역동적 힘이 넘친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두 춤의 차이는 폐쇄성과 개방성이다.

몇 백곡의 춤곡마다 따로 정해진 춤동작이 있는 파라파라 댄스가 나이트클럽에서 소수의 마니아들만이 즐기는 닫힌 춤인데 비해, 네 박자의 노래면 어느 곡이나 맞춰 출 수 있는 꼭짓점 댄스는 누구든 어디서건 삼각 편대에 낀 모든 이들이 다함께 즐길 수 있는 열린 춤사위다. 그렇기에 이 춤은 오늘 세계와 더불어 살려 하는 한국인의 열린 마음을 잘 반영하는 상징적 사회문화현상이다. 사실 꼭짓점 댄스는 1980년대 대학가와 노동계를 풍미한 해방춤이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진화한 것이다. 이 두 춤은 20여 년 전 어제와 오늘 우리가 얼마나 하늘과 땅처럼 다른 세상을 사는지를 잘 웅변한다.“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자욱한 최루탄 연기와 난무하는 곤봉에 맞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이 치열하게 벌어지던 시절 ‘민중의 애국가´로 널리 불린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장중한 곡조에 맞추어 학생과 노동자들은 가슴과 가슴을 맞부딪치며 온몸으로 해방을 갈구했다. 비밀스러운 저항의 마당에서 펼쳐진 그들의 거센 춤사위는 민주주의를 향한 타는 목마름과 독재에 정면으로 맞선 치 떨리는 노여움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지금 장년인 386세대가 질풍노도의 청춘이었던 그 시절 유행했던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의 노랫말과 달리, 그 때 이 땅은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이 결코 아니었다. 인간은 시대의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신군부 정권에 맞서 학교와 거리와 일터에서 민주주의의 회복을 외치던 젊은이들은 민족과 민중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거대담론의 명제에서 놓여날 수 없었다. 그러나 올해 6월의 광장과 거리에 구름처럼 모여든 붉은 악마들은 이제 몬태규와 캐풀릿 집안사이의 해묵은 증오 때문에 목숨을 던진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살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앞선 세대들의 가슴을 짓누르던 동족상잔의 아픈 기억과 민족과 민중의 거대담론을 넘어 낱낱의 행복을 추구하며 생각과 지향을 달리하는 타자와 더불어 살려하는 자유로운 개인으로 거듭났다.

얼마 전 6월의 광장과 거리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은 당당히 가슴을 펴고 세계를 향해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연달아 외쳐댔다. 아울러 그들은 “오∼필승코리아/오∼ 필승코리아/오∼ 필승코리아/오오레 오레∼” 윤도현 밴드의 흥겨운 네 박자 응원가가 울려 퍼지는 곳이면 어디서나 꼭짓점 댄스에 몸을 맡겼으며, 피부빛깔과 세대를 넘어 누구에게나 마음을 열고 손을 내밀었다. 열린 축제의 마당에서 한 데 어우러져 흥과 끼를 마음껏 발산하던 젊은 그들의 몸짓에는 전장의 폐허를 딛고 경제적 풍요를 이루고 개발독재를 넘어 풀뿌리 시민사회를 일군 한국인의 여유와 자긍이 짙게 배어 있다. 역사적 소임을 다하고 사라진 해방춤이 시대를 거슬러 다시 부활하지 않기를 바라며….

- 서울신문 2006년 6월 29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