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공우석 - 국립 자연사박물관이 없는 나라
[사이언스리뷰]국립 자연사박물관이 없는 나라
-- 공우석 (지리76/ 31회, 경희대 교수·지리학) --
세계인의 축제라는 월드컵의 열기가 높아지면서 국민의 관심이 축구에 집중되어 있다. 한때 정당하지 못한 정권이 국민의 관심을 돌기기 위해 스포츠, 영화 등을 정책적으로 지원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제는 스포츠가 국위를 선양하고 국민이 힘을 모으는 순기능이 있고, 영화는 우리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길잡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시적인 이벤트를 위해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중요한 일을 놓치고 있지는 않나 되새겨 보아야 할 때이다.
나라가 월드컵에 흥분해 있는 동안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도입 중인 전투기가 추락하여 젊은 인재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방위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워싱턴에서는 미국과의 무역자유화를 위한 FTA 교섭에서 국가경제의 미래에 중요한 협상이 진행되었으나 월드컵에 묻혀 국민의 관심은 높지 않았다.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진 사안들이 협상에서 우리의 국익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은 크지 않다. 언론매체들도 국가적인 중대사보다는 자사의 시청률과 구독률을 높이기 위해 월드컵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시점에서 과연 어떤 주제가 민족의 장래와 국익을 위해서 비중 있게 다루어져야 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여러해 동안 우리는 인접국들과 역사왜곡 및 영토 문제로 적지 않은 의견충돌을 겪고 있다. 일본과는 독도 영유권 문제가, 중국과는 동북공정에 따른 고구려사 왜곡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중국은 백두산의 경계 문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백두산 관할권을 조선족이 상대적으로 적게 사는 지방정부로 이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러시아와는 두만강 하류에 있는 녹둔도 문제가 걸려 있으나 공식적으로 거론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국가와 민족의 미래와 관련된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국민의 관심이 높지 않은 우리 국토를 바르게 알리는 교육과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전국에는 새로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하여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자체, 기업, 대학, 개인들이 설립한 여러 박물관이 많이 있어 교육과 학습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땅의 지질, 지리, 기후, 해양, 고인류, 고생태, 생물다양성, 환경 등 자연과 생태계의 역사를 소개하는 국립자연사박물관은 하나도 없다. 서울올림픽에 맞추어서야 외국 손님들도 맞이하기 위해 국립수목원이 광릉에 만들어졌지만 아직도 국립식물원 하나도 없는 것을 보면 사실 놀라운 일도 아니다. 선진국은 말할 나위도 없이 우리보다 훨씬 국민소득이 낮은 나라들에도 국립 자연사박물관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과학, 자연, 문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게 하는 지표이며 부끄러운 현실이다.
영국이 런던의 자연사박물관과 과학박물관을, 미국이 워싱턴의 스미소니언박물관을 무료로 개방하는 것은 선진국들이 이런 시설들이 교육과 관광에 미치는 중요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우리 어린이와 후속 세대들에게 국토의 역사와 생태를 바르게 알리고 민족적 정체성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국립 자연사박물관, 과학박물관, 식물원은 꼭 필요한 시설이다. 이런 시설 하나도 마련해주지 않고 젊은 열정을 짧은 기간의 이벤트에만 몰두하게 하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준비하는 바른 태도로 볼 수 없다. 국립 자연사박물관을 건립하자는 논의가 있을 때마다 예산 담당부처에서 강조하는 투자의 우선순위와 효율성을 선진국들은 모르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누구보다도 백두산 답사가 필요한 입장에서 아직까지도 오르지 않는 것은 타국의 비자를 받아 천지에 오르는 현실에서 통일 되는 그날, 우리가 어떻게 백두산이 우리 땅이라고 주장할 것인지 면목이 없기 때문이다.
- 세계일보 2006년 6월 2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