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권영준 - 생보사 上場 졸속은 안 된다
생보사 上場 졸속은 안 된다
-- 권영준 (경희대학교 국제경영대학 교수) --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한국의 대표기업 삼성전자를 국민들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과 극심한 반도체 가격의 등락이라는 위험하에서도 삼성전자가 우뚝 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묵묵히 엄청난 자금을 지원했던 총자산 약 100조원의 회사인 삼성생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이렇듯 실물경제의 발전을 결정적으로 지원했던 생명보험사들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외형적으로는 주식회사 형태였기 때문에 대주주가 주인인 듯 보이지만, 총자산에서 이들의 자본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불과 3% 미만이었을 뿐 아니라 실제 회사운영에 있어서는 보험계약자가 주인인 상호회사처럼 운영하였다.
더욱이 이들 대주주들은 계열사들의 채무를 해결할 때에는 비상장 생보사의 주가를 주당 70만원으로 계산하고, 자기 자식들에게 경영권을 세습하기 위해서 주식을 취득할 때에는 9000원으로 계산하는 엄청난 도덕적 해이를 저지른다. 이렇듯 실질적 주인(계약자)과 형식적 주인(대주주) 사이에서 갈등이 내재된 생보사가 10조원(주가 70만원 기준)이 넘는 상장차익 배분과 관련, 거래소 상장을 앞두고 다시 격돌하고 있다. 생보사의 기업공개는 자금조달뿐만 아니라 기업의 투명성 제고는 물론, 재벌의 기업지배구조 및 금융과 산업의 분리라는 핵심사안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여 하루빨리 바람직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
90년대 중반까지 약 40년간 열악한 보험모집의 환경 속에서 보험료 수입의 극대화라는 양적 성장을 목표로 했던 국내 생보사들은 과다한 사업비를 감당하기 위해서 일반 무배당 보험료보다 약 15% 비싼 유배당 보험상품만을 판매해 왔다. 이 때문에 보험계약자들은 제대로 된 배당을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나중에 은행예금보다 손해 보는 상품이라는 것을 알고 1년 만에 약 50%가 계약을 해지하는 엄청난 불완전 연고판매에 시달렸다.
한편 정부는 감독당국으로서 보험계약자 보호를 통한 보험산업의 정상화보다는, 내자조달의 수단으로서 열악한 보험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자산운용상 특혜가 수반된 대규모 부동산 투자가 가능하도록 배려했다. 이러한 정부의 지원과 계약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성장한 생보사들은 1989년 상장(上場)을 전제로 자산재평가를 실시했고, 이에 맞춰 정부는 ‘생보사 잉여금 및 재평가적립금 처리 지침’을 만들었다.
그 내용은 재평가적립금을 주주에게는 최대 30%, 보험계약자에게 40~70% 범위 내에서 각각 배분토록 한 것이었다. 이는 순수 주식회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조치로서 정부도 생보사가 실질적 상호회사였음을 인정한 것이다. 실제로 계약자 몫으로 내부 유보된 재평가적립금이 자본잉여금 항목으로 처리되면서 실질적 자본으로 기능하였다.
생보사가 상호회사 방식으로 경영돼 왔음을 인정한다면 보험계약자도 주주와 함께 생보사의 주인의 위치에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고, 따라서 보험계약자에게도 해당지분만큼의 상장이익을 배분해 주는 것이 올바른 상장방안이다. 또한 90년대 중반 이후 판매한 무배당보험 계약자와 유배당 계약자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이해상충의 문제를 자산의 구분 계리(計理)를 통해서 반드시 해결해야만 한다.
그러나 정부는 생보사 상장과 관련, 과거 수 차례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상장 방안을 마련해놓고도 특정업체의 반발과 로비에 밀려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금융감독당국이 이번에도 재벌기업들의 로비에 밀려 상장 예상차익 10조원 이상을 대주주들이 독식하도록 허용하는 방향으로 상장을 추진한다면 ‘5·31 지방선거’ 후 나타나는 최초의 대형 레임덕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 조선일보 2006년 6월 19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