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김봉환-내 조국의 재발견
▲김봉환(경제64, 사회학 박사)
<b>내 조국의 재발견</b>
필자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지들을 두고 머나먼 이국땅 캐나다로 서둘러 이민을 떠난지가 어느새 4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그곳 생활에 빨리 적응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역을 치러야했던가. 그러다보니 조국소식도 자주 듣지도 못하고, 바쁘게 살았다. 10년에 한번쯤 조국을 찾게 되면 친척들이 자동차로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기는 했었으나, 막상 버스나 전철을 타고 혼자서 이곳저곳을 찾아다녀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거의 반세기 동안에 일어난 조국의 눈부신 발전과 변화는 무척이나 감격스럽고 신기하기만 하다.
길을 잃고 헤메다가 지나는 행인들에게 물어보면, 모두들 아주 친절하게 잘 도와주는 것이 참 고마웠다. 필자가 지난해 가을에 벤쿠버에서 시의원에 출마하여 선거 운동중에 만났던 한 동포는 200불짜리 수표를 건네주며, 하시는 말씀이 “내가 지금은 은퇴했기 때문에 요만큼 밖에 못 드려서 미안합니다.” 그 순간 나는 내 마음이 뭉클 했으며, 마음속으로 울었고,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동포애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한번 깨닫게 되는듯하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부모나 조부모들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가에 별로관심도 없을 뿐더러 오늘의 한국의 경제발전을 당연히 여기는듯하다. 우리는 평소에 자기가 잘되면 자기가 잘나서 잘되고, 잘 안되면 모두 조상을 탓하는 폐습이있다. 필자는 오늘 이 말을 바꾸어 잘되는 것은 조상 덕이고 잘 안되는 것은 본인 탓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본에 빼앗긴 조국을 다시 찾기 위하여 수많은 순국선열들의 희생이 있었고,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에는 수많은 유엔군도 참전하여 남한을 수호했다.
특히 캐나다의 페트리치아공주 경 보병대 가 가평전투에서 10:1 이란 인민군들이 압도적으로 남침 했을때 그 기지를 사수하지 못했더라면 인민군들이 부산까지 큰 어려움 없이 밀고 내려가 한반도의 역사는 지금보다 판이하게 달라질 수 도 있었을 것이다 516명의 캐나다병사들이 전사했으며, 총 26,000명의 캐나다 병사들이 한국전에 참여했었다.
캐나다에는 단풍나무가 아주 흔하나 조국의 늦가을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잎사귀와 빠알갛게 물든 단풍나무의 잎사귀들은 오늘따라 유난히도 아름답다. 이번 방문은 내 조국의 재발견의 기회라고 생각하니 더 많은 곳을 찾아가보고 소중한 내조국의 역사를 다시 배우고 돌아가야만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