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임무성 수필-취몽(醉夢)
▲임무성(법학64, 전 경찰청 경무관)
엊저녁에 수산시장 횟집에서 옛 친구들을 만났다. 맥주에 소주를 섞어 마시고 노래방까지 들렀더니 아침에 일어나기가 만만치 않다. 아침 먹으라는 아내의 재촉을 못 들은 체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엷은 잠결에 또닥또닥 컴퓨터 자판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살며시 문을 열고 내다보니 거실에서 어머니가 컴퓨터를 치고 계셨다. 언제 왔는지 어머니 옆에 형님도 서 있다. 두 번째 시집『알바트로스의 태양』을 낸 시인이다. 형님이 어머니에게 뭘 치고 계시냐고 묻자, 동네 할머니들 ‘계’모임 회칙을 친다고 하셨다.
“형님, 우리나라가 확실히 IT 강국이죠? 구순을 넘긴 어머니도 이렇게 컴퓨터를 잘 치시니…”
“맞아. 그건 그렇고 수필집은 언제 나오나, 꽤 많이 썼을 텐데.”
“네, 팔십 편쯤 되요. 그중에서 오륙십 편정도 골라 올해 안에는 내려고 해요. 지금 한 편씩 마지막 교정을 보고 있는데 은근히 시간이 많이 걸리네요.”
한참 이야기를 한 탓인지 갑자기 시장기가 돈다. 어럽쇼. 마침 음식솜씨 좋은 막내제수씨가 육개장을 끓였다며 큰 냄비를 들고 들어온다. 이제 일어나서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머니가 슬그머니 일어서서 현관문을 나선다. 어느새 형님도, 제수씨도 사라졌다.
눈을 뜨고 멍하게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또 다녀가셨군. 1916년생이니까 살아계셨으면 올해가 꼭 백 살이시네. 돌아가신지 벌써 7년이나 되었네. 술 많이 마신다고 걱정이 되셔서 다녀가신 걸까, 열심히 글을 쓰라고 컴퓨터 앞에서 현몽을 하신 걸까? 어쨌든 이렇게라도 종종 다녀가셔서 좋다.
그런데 어머니는 어쩌면 그렇게 내게 단 한마디 말씀도 안 하시는지, 왜 웃지도 않으시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그냥 와락 껴안아 볼걸!
해가 중천에 떴다는 아내의 쇳소리에 옷을 주섬주섬 걸치고 주방으로 가서 김이 솔솔 나는 냄비 뚜껑을 열어보았다. 북엇국이 끓고 있었다.
“아닌데, 육개장인데 왜 북엇국이 끓고 있지?”
잠이 덜 깬 건지, 술이 덜 깬 건지….
--------------------------------------------
임무성 동문은 2011년 격월간 ‘에세이스트’로 등단했으며 서정과서사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에세이스트작가회 서울.경기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경력 |
경희대 법대 20회(64학번)동기회장
총동문회 자문위원
경희동문합창단 단원
경찰청 경무관, 서울성동경찰서장 역임
대통령 민정비서실 행정관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