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도정일-그 위대함과 저 엉터리와의 조화
[비판적상상력을위하여] 그 위대함과 저 엉터리와의 조화
- 도정일 (영문61/ 13회, 경희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
세계 굴지의 위대한 서점을 품고 있는 교보빌딩
1층에 자리잡은 한글창제 설명한 영어동판
그 날탕 영어를 만인이 오가는 벽면에 내붙이다니!
‘관광한국’을 외치는 문화부, 먼저 번역 오류부터 잡길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
서울 세종로 1번지 교보빌딩의 지하층에 자리 잡은 교보문고는 아시아권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는 큰 서점이다. 연전 서울을 방문했던 일본 출판계의 북스타트 관계자 한 사람은 이 서점에 들어가 보고 깜짝 놀라 방명록에다 ‘세계 제1의 서점’이라 써넣고 나온 일이 있다. “정말 세계 제1이냐?” “그렇다고 생각한다. 일본에도 이만한 규모의 대중서점은 없다. 이건 서울의 자랑거리다. 서울의 관광명소 안내 정보에 왜 이 서점은 올라 있지 않는가?” 그 방문자의 평가에 약간의 과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책읽기에 관한 한 한국이 결코 자랑할 만한 수준의 나라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그 일본인 출판전문가로서는 서울 도심에 이처럼 축구장만한 서점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퍽 놀라운 발견이었던 모양이다.
그 교보빌딩의 지상층 커피점에 그가 들리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거길 들렸더라면 그는 사람 놀라게 할 또 하나의 ‘관광거리’를 거기서 발견하고 무척 씁쓸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건물 지상층 커피숍의 계산대 윗편 넓은 벽면에는 도들 글자로 새긴 훈민정음 서문과 함께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연유를 영어로 소개한 동판 글자들이 붙어 있다. 교보문고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그 일본인 방문객이 커피 마시러 들렸다가 문제의 그 영어안내문을 보았더라면? 영어를 곧잘 구사하던 그가 그 영문을 보았다면 필시 그는 심한 딸꾹질에 걸렸을 것이 틀림없다. 그 딸꾹질은 커피 때문이 아니라 어떤 혼란 때문이다. 거 참 알다가도 모르것네, 세계 굴지의 위대한 서점을 품고 있는 건물이 저런 날탕의 영어를 만인이 오가는 커피점 벽면에 내붙이다니, 그 위대함과 저 엉터리는 서로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 (남의 건물 이름을 들먹여 참 미안한 일이지만, 사실은 여러 사람이 여러해 전부터 교보의 관계 인사들에게 그 안내영문을 갈아치우도록 수차 권고한 일이 있다. 그러나 문제의 그 안내문은 최근까지도 거기 커피숍 벽면을 태연히 채우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안다. 혹 내가 모르는 어떤 ‘최근’에 갈아치우기가 이루어졌다면 여러 사람의 권고가 드디어 ‘말 값’을 받은 것으로 알고 이 글의 이 부분을 얼른 취소해야지.)
그래, 이럴 때는 풍자가 제격이다. 대한민국에서 엉터리 영어 번역문은 그 자체로 관광거리고 관광자원이다. 고궁, 사찰, 역사유적, 기념품 가게, 휴양시설, 명승지, 예술문화 행사안내, 상품광고, 간판 할 것 없이 한국을 찾는 사람들이면 방방곡곡 어디서나 틀림없이 만날 수 있는 것이 엉터리 안내문, 조잡한 영어, 번역 오류다. 이런 번역 오류에 대한 관광객의 반응은 대체로 세 단계를 거쳐 진화한다. 첫 째는 이해의 단계다. 영어사용국이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라며 좋게 봐주는 것이 이 단계에서의 반응이다. 두 번째는 우려, 불쾌, 혼란의 단계다. 한두 번도 아니고 가는 곳마다 번역 오류를 만나면 사람들은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차라리 영어 같은 거 쓰지 말지, 쓸 것이라면 왜 저렇게 엉터리를? 세계 13대 교역대국이라는 나라의 국제 감각이 고작 이 정도? 영어 열심히 가르치고 초등생부터 영어연수 간다고 소문난 동네, 제 힘으로 문자를 창조하고 수천 년 역사와 문화전통을 자랑하는 나라, 신문마다 무슨무슨 ‘섹션’이라며 한글로 된 신문에 대문짝만한 영어 단어를 박아 넣어 “우리도 영어 한다”고 광고하는 나라의 외국어 구사력이 이럴 수가?
그러나 이런 반응은 아직 한국 관광의 ‘참맛’을 모르는 사람의 것이다. 그 참맛은 세 번째 단계, 곧 깨침과 도통의 순간에 찾아온다. 한국은 가는 데마다 웃기는 영어로 관광객을 즐겁게 해주는 나라임을 알게 되는 것이 ‘깨침’이고 그 즐거움을 만끽할 줄 알게 되는 것이 ‘도통’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방문객은 번역 오류가 한국인의 둔감증, 무신경, 나태의 결과가 아니라 고도의 관광용 코메디라는 것을 깨쳐 알게 된다. 그러면 그렇지, 이건 눈부신 전략이야, 전략. 이때부터 방문객은 틀린 번역을 보면 되레 기분이 좋아지고, 걸작 수준의 엉터리를 만나면 그를 즐겁게 해주려는 한국인의 노력에 감사하면서 허리를 잡고 웃는다. 이 단계의 도통한 방문자들에게 한국식 번역 오류는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 추억의 관광상품, 한국 방문의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된다.
너무 늦기 전에, 늦어도 내년까지, 그것도 안 되면 3개년 계획으로, 정부와 유관 기관들은 망신스런 번역 오류들을 고치고 바로 잡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우선 ‘관광한국’을 외치는 문화관광부는 지금 같은 번역 오류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절대로 관광한국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부터 똑바로, 깊이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관광지 기념품 가게에서 엉터리 영어 간판과 안내문을 보는 순간 방문객은 가게 안으로 선뜻 발을 들여놓지 못한다. 저런 엉터리 언어를 쓰는 가게의 물건을 믿을 수 있을까 싶어서다. 엉터리 안내문을 만나는 순간 고궁, 사찰, 역사유적들은 한순간 방문자의 눈에 ‘가짜’ 같아 보인다. 신뢰가 무너지면 모든 관광자원들은 의심과 불신의 대상으로 추락한다. 문광부가 알아야 할 것은 제대로 된 번역이야말로 첫 번째 관광자원이고 문화 콘텐츠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방문자에 대한 예절이고 커뮤니케이션의 기초이며 주인의 도덕적 정신적 권위를 받아들이게 하는 설득의 제1원리이기도 하다. 문화 콘텐츠 개발하느라 쏟아 붓는 자원의 백분의 1만 투입해도 해결될 일을 수십 년 째 방치해서 나라 망신을 자초하면서도 관광한국이라?
번역 오류의 심각성은 관광 분야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예술, 문화, 상품, 저작물, 각종 행사 할 것 없이 곳곳에 독버섯처럼 퍼져 ‘품질한국’을 위기에 빠트리고 있는 것이 번역 오류다. 외국인의 눈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품질에는 도무지 관심 없고 번질번질 외피 꾸미기에만 급급한 허장성세의 나라로 비쳐야 할 것인가. 껍데기만 화려하고 속내는 부실한 날탕의 나라로 인식되게 해야 할 것인가. 이 문제의 해결은 시급하다. 일을 맡을만한 전문적 국가기관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한국문학번역원 같은 기관은 문학 번역만 주관하는 곳일 필요가 없다. 모든 홍보성 문화예술 관련 번역 역시 그 기관의 감수를 받도록 절차화하는 방안도 문제 해결의 한 방법일 수 있다.
[한겨레 2006-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