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임성호-인사청문회 시즌… 국회, 구태 벗어야
▲임성호(모교 정치학 교수)
개혁안을 만들고 통과시키기는 쉽지만 그 취지를 살려 성과를 내기는 힘들다. 이해관계가 매우 복잡하게 얽히고 급속히 변하는 정치개혁안의 경우에 특히 그렇다. 그러므로 정치개혁안 시행 후 얼마간 지난 시점에 원래의 취지와 현실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그 괴리가 크다면 반성과 재조정을 통해 거듭나야 한다.
2000년 6월 입법화된 인사청문회 제도는 당시 큰 기대를 받은 개혁안이었다. 적어도 1990년대 중반부터 여러 학자, 언론인, 시민단체 활동가가 도입의 당위성을 제기했고,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는 사회 인식이 퍼지는 가운데 당시 여론도 인사청문회 제도에 호의적이었다. 정치개혁을 갈망하는 사회 분위기는 정치인들이 서로 엇갈리는 계산에도 불구하고 인사청문회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한 압력이었다.
인사청문회법이 공포된 지 9년 이상 흐른 오늘날 그 개혁 취지가 살아나고 있는지 중간점검을 해볼 때 결과는 실망스럽다. 원래의 취지는 대통령이 국무총리와 장관 등 최고위 지명직을 혼자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국회의 대(對) 행정부 영향력과 위상을 높이자는 것이다. 자질을 제대로 갖춘 인물인지 검증하자는 취지도 물론 있고, 정책 현안에 대한 질의 응답을 통해 국정의제를 설정하고 국정 방향을 잡는 데 일조하자는 취지도 물론 있다. 그러나 중복되는 여러 취지 중 최우선순위는 대통령의 국정 독주를 막고 의회의 영향력과 위상을 높임으로써 권력 간 견제와 균형의 미(美)를 살리자는 데 있다.
그동안의 현실은 과연 어떤가. 인사청문회가 정파 대립을 극도로 격화시키고 국회에 대한 국민 불신을 더욱 가중시킴으로써 오히려 국회의 위상과 영향력을 떨어뜨리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간 대부분의 인사청문회는 국정철학과 정책 입장을 다루기보다는 개인적 문제를 둘러싼 인신공격으로 점철됐다. 그러다 보니 예리한 논리와 깊은 통찰력에 입각한 토의는 실종되고 무례한 일방적 매도와 감정적 말싸움이 난무했다. 인사청문회 때마다 정당 간 관계가 경직되고 대립의 골이 깊어지는 것을 보며 국민은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 전체에 대한 불신의 마음을 되살리곤 했다. 이런 국회에 힘이 실리겠는가.
표면상 인사청문회가 대통령의 독주에 제동을 거는 데 다소라도 성공하고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국회의 위상과 영향력 증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취지가 살아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개인적 흠결 찾기와 무례한 언사로 후보자와 해당 기관, 그리고 대통령에 타격을 가하는 가운데 국회 자체와 여야 의원 모두가 불신의 늪에 더 깊이 빠진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오늘부터 인사청문회 시즌이다. 대법관 후보자, 장관 후보자 6인,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일정이 연속 잡혀 있다. 어느새 도입 9년째인 인사청문회 제도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만큼 원래 취지를 향해 거듭나야 한다. 정쟁, 말싸움, 무례, 집단주의 등 국회에 연관된 부정적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모습, 그래서 행정부뿐만 아니라 국회 스스로의 위신을 깎아내리는 모습을 이제는 벗어야 한다.
마침 기회도 좋다. 장관이나 국무총리 지명자들의 국정철학과 정책 입장에 대해 토의하며 국정 운영상 국회의 선도적 위상을 높이기에 적당한 사회 현안이 수북이 쌓여 있다. 대북관계,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개헌, 노사관계, 미디어 규제, 경기부양, 세제개혁, 4대강 개발, 복지정책, 국방개혁, 지구온난화 등 숨차게 중요한 현안이 기다리고 있다. 각각에 대해 반대를 위한 반대나 옹호를 위한 옹호가 아니라 진지하고 진정성 있는 질의응답이 오고갈 수 있다면 인사청문회가 구태를 벗고 원래 취지를 위해 새로 태어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임성호 / 경희대 교수·정치학]]
[2009. 9. 14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