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박훤일-IT 도약시킬 워킹푸어 대책을
▲박훤일(대학원, 모교 교수)
미국발 경제 위기에다 최근에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실직 사태로 우리나라의 고용 사정이 크게 악화되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현재 300만명에 이르는 워킹 푸어(working poor)에 대한 체계적인 해결책 마련을 관계 당국에 지시했다고 한다.
워킹 푸어란 밤낮 없이 부지런히 일해도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근로계층을 일컫는다. 이들은 낮에 일하고 밤에도 다른 일을 하는 등 투 잡, 스리 잡도 불사하지만 저축 여력이 없기에 몸이 아파 쉬기라도 하면 금방 생계가 곤란해진다.
부가가치 창출하는 일자리
1960∼70년대에는 농촌을 떠나 무작정 상경하더라도 몇 년 열심히 일하면 집도 장만하고 시골 사는 가족들을 불러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왜 그럴까. 지금은 열심히 일한 만큼 돈을 버는 산업화 사회가 아니라 부가가치 높은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는 정보화 사회이기 때문이다.
정보화 사회의 키워드인 인터넷 등 정보기술(IT)을 활용할 수 없다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벌이가 신통찮은 것이다. 오늘날 직업은 근무 장소, 작업 시간이 아니라 부가가치 생산성으로 그 패러다임이 바뀐 지 이미 오래다.
최근 필자의 직장에도 조그만 변화가 있었다. 현관 로비를 지키던 경비 요원이 없어지고 첨단 장비로 무장한 경비용역업체 직원이 일이 있을 때만 나타나는 체제로 바뀌었다. 기업이나 기관들로서는 임직원 얼굴을 기억하고 반갑게 인사하는 경비가 아니라, 저렴한 비용으로 도난·안전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더 실효적이라는 판단이 이처럼 변화를 몰고 온 것이다.
이제 어느 분야든 IT를 구사할 수 없는 노동력은 해고 0순위가 되었다. 반대로 디지털로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은 어디서든 놀면쉬면 돈을 벌고 있다.
정부가 잇따라 내놓는 워킹 푸어 대책을 보면 단순한 일자리 만들기에 그쳐 안타깝다. 미취업 대졸자를 위한 청년 인턴십이나 저소득층 실업자를 위한 희망근로 프로젝트는 당장의 생계 보조는 될지언정 장기적인 생활 보장책은 될 수 없다. 조만간 경기가 회복돼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다시 실업자가 되기 십상이다.
경제의 글로벌화로 개도국 근로자들에게 일자리를 뺏긴다고, 첨단 기술 때문에 일자리가 늘지 않는다고, 첨단 IT 제품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세계화와 기술 진보를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他분야 접목해 후방효과도
지금 세계적으로 성가를 올리고 있는 우리나라의 전자업체, 자동차업체, 조선업체들을 보면 답이 나온다. 취업이 불안정한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려면 개개인들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 비결은 지식정보 사회에 걸맞은 직업교육에 있다. 워킹 푸어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은 개별 근로자들도 IT를 구사할 수 있게 하는 직업교육이어야 하고, 정부 차원에서 IT를 활용하는 일자리를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다. 몇년 전에도 실시한 바 있지만 국가 정보화의 큰 틀에서 각종 공공자원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사업을 계속해야 한다.
그 밖에 유통물류의 현대화, U-헬스, U-시티 프로젝트 등 찾아보면 IT와 관련된 일자리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도 정부가 주도해 IT 인력을 적극 채용하게 하고, 맞벌이 주부를 위한 육아시설, 독거노인을 보살피는 요양시설 운영도 가능하면 IT 서비스와 접목시키도록 해야 한다.
단순히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 청년 백수, 저소득층 실업자가 다룰 수 있는 정보기술을 단계별로 가르쳐 우리 산업경제에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을 수행하게 해야 한다. 남는 인력은 정보화 사회로 이행 중인 신흥 개도국에 내보내면 된다.
그리하면 단지 워킹 푸어를 탈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온 국민이 소득 향상과 더불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IT를 그 도약대로 삼아야 한다.
박훤일 (경희대 교수·IT법)
[2009. 8. 23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