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혜경-녹색생활이 지구를 살리는 길


동문특별강좌 서혜경-녹색생활이 지구를 살리는 길

작성일 2009-08-17
▲서혜경(모교 음악대학 교수)

여름 같지 않은 여름이라는 바닷가 사람들의 얘기에 영화 `투모로우`가 생각난다.

몇 년 전의 영화 `투모로우`는 참 황당했다.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부성애는 나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지만 터무니없는 한파의 급습으로 인한 지구의 재난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과학적인 상식이 많은 이에게 물었더니 지구온난화로 인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사태라고 했다.

북극해는 북극의 얼음으로 인해 보통 바닷물보다 훨씬 염도가 높다 한다. 비중이 큰 고농도의 바닷물은 해저 3000m 아래로까지 가라앉는 침강류가 되고, 침강류는 깊은 바다의 물을 밀어내고 이 물이 지구상 모든 해류를 만드는 단초가 된다. 해류는 지구의 기온을 고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따뜻한 열대 바다의 물을 북쪽으로 밀어 올려 북극지방을 데워준다. 만약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얼음이 모두 녹는다면 북극해는 다른 바다와 염분 농도가 같아지고 침강류가 없어진다. 침강류가 없어지면 따뜻한 바닷물이 북쪽으로 가지 못해 알래스카나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빙하지대가 되고 얼음은 점점 남하하여 지구는 빙하기를 맞게 된다. 이 방면에 관한 연구자들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앞으로 50년 이내에 이런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한다. 끔찍한 가정이지만 전혀 근거 없는 가설도 아니다. 빙하기가 닥친다면 지금 우리가 흥청망청 누리고 있는 문명의 양태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겠는가. 만약 인류가 대비하지 못한 사이에 빙하기가 닥친다면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중세의 암흑기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

기상이변에 관한 주장으로 `기본스의 패러독스(역설)`라는 게 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은 눈앞에 보이지도 않고 당장은 느낄 수도 없지만 재앙이 닥쳤을 때는 이미 걷잡을 수 없으며 온난화의 방지를 위해서는 온 인류의 참여가 절실하지만 즉각적이지도 않고 불확실한 미래를 위하여 당장의 불편을 감수할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이 `기본스의 패러독스`다. 내 아이들에게 침강류와 빙하기 얘기를 했더니 "엄마, 50년 후면 엄마는 하늘나라에 가 계실 건데 무슨 걱정이 그리 많아요?"라고 말한다. 역시 급박한 당장의 손해나 위험이 없으면 반응하지 않는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 본 앤서니 기본스는 혜안을 가진 사람이다.

요즘 녹색기술이 시대의 화두임을 강조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녹색생활을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불편과 인내가 필요한지를 말하는 사람은 없다. 음식물 쓰레기로 만든 퇴비로 텃밭의 남새를 키우는 데 얼마만한 기다림과 노력이 필요한가. 또 음식물 쓰레기로 재생된 흙으로 한 송이 장미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손길이 가야 하는가. 녹색생활은 자연친화적인 생활과 느림의 미학을 즐길 줄 모르면 고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손발에 흙을 묻히고 등에 땀이 나더라도 녹색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지구를 살리고 우리들 자신을 살리기 위하여.

광활한 우주 속의 작은 별 지구는 인간의 전유물도 아니고 우리의 후손들로부터 빌려 쓰고 있는 것이다. 아껴 쓰고 곱게 사용하여 최대한 원형대로 자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앨빈 토플러는 중세까지의 인류는 자연이 베풀어주는 이자만으로 먹고 살았으나 산업혁명 이후의 인간들은 지구 속에 저장된 원금마저 까먹고 있다고 했다.

중세의 인류가 몇백 년간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요즘 우리는 단 하루에 소모하고 있지 않은가. 작금의 우리는 화석연료에 의한 문명이 발달하면서 자원을 고갈시키다 못해 너무나 자연을 괴롭히고 있다. 인간들의 분별없는 난개발로 인한 자연의 신음 소리를 들어보라. 기상이변이 없더라도 어차피 석유문명은 오래갈 수 없고 우리의 지구는 이런 낭비 지향적인 소비문명을 지탱할 능력도 없다. 자연 앞에 좀 더 겸손해지고 알뜰해져야 한다. 내가 더불어 살다가 그 품 속으로 돌아가야 할 자연이 아닌가.

[서혜경 피아니스트ㆍ경희대 교수]
[2009. 8. 14 서울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