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이영춘-한여름 밤의 꿈, 대관령국제음악제
▲이영춘(국문60, 시인, 강원여성문화예술인회장)
한여름 밤, 꿈의 환희!
제6회 대관령국제음악제의 막이 올랐다. 지난 22일 오후 8시, 500여 석의 춘천 죽림동 성당이 음악애호가들로 넘쳐났다. 창단 12년째를 맞으며 젊은 파워와 현악 앙상블로 주목받고 있는 이성주 예술 감독의 `조이 오브 스트링스'가 서막을 올렸다. 600여 관중이 숨소리 하나 없이 그린 듯 앉아 있다. 단원들이 악기를 들고 무대 위로 등장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쏟아졌고, 젊은 연주자들은 하나같이 예뻤다. 그때 내가 무심결에 우연히 옆에 앉은 지인에게 “모두 다 너무 예쁘네”라고 하자. 지인은 “저기에 우리 딸 둘이 있어요!” “어머, 어디 서 있는 누구예요?”라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 둘 다 저렇게 훌륭하게 키워 내다니? 그 순간 나는 나의 자괴감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아이 하나도 그렇게 음악을 하고 싶어했는데 뒷바라지를 못 해 주어서 버젓한 무대 위에 한 번 세우보지 못한 한이 가슴을 후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나는 음악을 잘 모른다. 모르면서도 듣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글을 쓸 때도 늘 음악은 나와 함께 한다. 그렇게 음악을 모르는 내가 오늘 온전히 연주에 취한 것은 글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음악이 가슴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좁은 공간에서의 연주는 연주자들과 친밀히 교감할 수 있는 장점이 되었고, 선율 속에 나의 마음은 녹아들고, 영혼의 자유로움마저 느낄 수 있었다. 실로 음악이란 이렇게 눈과 귀와 마음을 온통 하나로 묶는 화합체인 것 같다.
특히 곡 선정에 있어서도 주로 청중에게 비교적 많이 알려진 모차르트, 차이코프스키, 드보르작 같은 작곡가들의 곡을 선정했고, 오후 8시에 시작되는 연주라, 세레나데가 주류를 이루게 선정한 것도 관객과 연주자들의 거리를 한껏 좁혀 주는 배려인 듯해서 좋았다.
더구나 황 루오(Huang Ruo)의 아시아 초연 곡이라는 `싸이를 떠나며(Leaving Sao)' 일명 `슬픈 이별'이란 주제로 할머니와의 이별 곡이라 한다. 특히 이 곡은 내 아이 생각과 연주의 애련한 선율로 감정의 극치를 주체할 수 없었던지 나는 급기야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대개의 경우 초연되는 곡은 우리 귀에 익숙하지 않아서 멀게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곡은 사뭇 달랐다. 게다가 예술 감독 이성주의 바이올린과 알렉스 리포우스키(Alex Lipowski)의 타악기(percussion)까지 곁들인 연주로 이뤄졌으니 더할 나위 없는 카타르시스 그 자체였다. 어쩌면 이성주 예술감독이 곁들여 준 `슬픈 이별'이란 설명 때문에 더욱 감명 깊었는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이 곡은 아이들 장난감 같은 호스를 휘둘러 레(re)와 파(fa) 음을 내어 청중의 시선을 끌어들인 것 역시 기발하고 이색적인 호흡이기도 하였다.
음악의 힘, 음악은 모든 예술 중에서 우리의 정서를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크게 울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시를 쓸 때도 음악을 들으라고 권장하기도 한다. 또한 화음을 통한 `화합'의 힘도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북방한계선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한때 북한은 심야에 자주 음악을 우리 쪽으로 흘려보낸단다. 음악을 통해 감정을 유혹하려는 심리전인 것이다. 그만큼 음악은 우리의 심장 깊숙이 잠재해 있는 우리 영혼의 울림이다.
세계를 울렸던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팀 로빈스)는 “내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는 있지만 내 머릿속에 있는 음악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라고 했다. 그만큼 음악은 우리의 자유정신과 희망이다. 앤디가 도서관의 장서를 정리하다가 낡은 음반 한 장,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발견하여 그중 여성 이중창 `저녁 바람이 부드럽게'를 큰 스피커를 통해 감옥 곳곳에 울려 퍼지게 틀어 놓는다. 그때 모든 죄수의 음울하던 얼굴에 하나같이 환희와 희망의 물결이 스친다. 이렇게 음악을 통한 영혼들은 자유정신과 평화와 희망으로 화합의 공동체를 이룬다.
제6회 대관령국제음악 축제! 한여름 밤의 꿈과 환희가 다시 우리 가슴속에서, 세계인의 가슴속으로 넓고 푸르게 평화와 화합의 상징으로 한껏 울려 퍼지기를 소망한다.
이영춘 시인 강원여성예술인연합회장
[2009. 7. 27 강원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