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지-클린턴-김정일 회동 후 북한의 선택


동문특별강좌 우승지-클린턴-김정일 회동 후 북한의 선택

작성일 2009-08-07
▲우승지(모교 국제정치학 교수)

북·중 국경에서 탈북자 문제를 취재하던 미국 국적의 두 여기자가 북한 경비병에 의해 체포돼 시작된 억류 사건은 북한법 체계에 따른 공식 재판에 이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전격적인 평양 방문으로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클린턴의 때늦은 방북을 바라보면서 그가 임기말 북한 미사일 문제를 담판짓기 위해 평양행을 감행했더라면 1차, 2차 북핵 실험도, 현재의 북핵 위기도 없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운 감정을 피력하는 인사도 간혹 있을 것이다.

1994년 6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김일성의 대동강 회동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역사의 ‘반복’ 묘미를 느낄 것이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의 백악관 참모들은 카터의 방북을 사적 방문으로 규정하며 카터의 외교적 노력에 거리를 두려는 태도를 취했었다. 김일성의 돌연한 사망으로 남북 정상회담은 성사되지 못했지만 핵협상은 지속돼 결국 북·미 합의각서를 통해 한반도에 해빙의 기운이 돌았었다.

일단 북한이 바라던 북·미 양자회담의 모양새를 갖추게 됐지만 이번 김정일-클린턴 회동이 양국의 해빙으로 이어지기에는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아 보인다. 북한은 제법 정중하게 클린턴을 맞이했다. 흡사 정상회담을 방불케하는 백화원 초대소에서의 만남에 김정일 위원장은 굳이 외무성 제1부상과 통일전선부장을 배석시켰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클린턴의 방북을 사적 여행으로 애써 평가절하하고 나섰다. 미국은 이번 클린턴 방북으로 애써 조성된 대북 제재의 국제 공조가 흐트러지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북한은 향후 ‘150일 전투’를 성공리에 끝내고, 축제 속에 공화국 창건일과 노동당 창건일을 맞이하기 위해 외교적 성과를 목말라하고 있다. 잇단 핵실험, 미사일 발사로 공세를 취하고 이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북한은 가을 ‘이삭줍기’를 위한 분위기 조성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북·미 평양 회동을 한반도의 해빙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비핵화와 관련한 북한의 가시적 조치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도발과 보상의 악순환에 진저리를 내고 있는 미국이 북한의 불가역적 양보 조치 없이 섣불리 북한이 내민 손을 잡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북한의 추가 조치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이번 클린턴의 방북은 카터의 방북과 달리 인도적 차원의 소박한 사적 방문으로 끝날 개연성이 크다.

두 미국인 여기자의 석방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개성공단과 동해에서 억류된 한국인들의 안전 및 석방과 관련한 희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고 있다. 자국 국민의 안전을 위해 전직 대통령까지 나서는 미국의 적극성에 비하면 아직 문제 해결의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모습은 초라하다. 자국민의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의 모든 능력을 동원, 북한의 문을 두드려야 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청와대의 의중을 북한의 권력 핵심부에 전달할 수 있는 비중 있는 특사의 파견 카드까지 포함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태도 변화다. 북한 당국은 ‘인질정치’로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자축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실상 지금 상황에서 북한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음을 깨달아야 한다. 애꿎은 민간인들을 볼모로 삼아 정략적 목표를 이루려 한다는 ‘불량’국가의 이미지를 회복하기에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군사력·경제력에 못지않게 국가의 품격과 매력이 중요시되는 소프트 파워의 시대에 국격의 추락을 대신할 수 있는 자원은 별로 없다. 미국인 석방에 이어 우리 국민도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측에 인도하는 정도(正道)를 걷기를 촉구한다. 그것이 북한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우승지 /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2009. 8. 6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