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도정일-미친 부동산 미친 사회
[비판적상상력을위하여] 미친 부동산 미친 사회
- 도정일 (영문61/13회) / 경희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
투기 떼돈에 무덤덤한 사회적 지성의 붕괴
운으로 돌아가는 사회에 사는 삶의 무력감
시장에 맡기라지만 미친 시장에 어떻게?
정권 비아냥만 말고 사회전체가 정신 차려야
지금 온 나라가 ‘부동산 광풍’이란 것에 휩싸여 정신을 잃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토지나 건물, 수목처럼 ‘움직여 옮길 수 없는 재산’이 부동산이다. 그러나 2006년 여름과 가을, 아니 2006년 한 해를 통틀어 한국에서 부동산은 정부가 무슨 정책을 내놔도 도저히 잡을 수 없을 듯한 괴물, 그래서 ‘정부를 미치게 하는 어떤 것’이다. 아홉 번의 부동산 대책 끝에 정부가 부동산을 잡기는커녕 오히려 그 광풍에 휘말려 휘청거리게 되었다면 정책 입안자들이 미칠 만도 하다. 비판자들은 애시 당초 정부의 정책 방향이 틀렸다고 말한다. “세금으로 부동산을 잡겠다는 것이 될 법이나 할 소리냐”라는 비판도 나오고 평등주의 정권이 ‘부자’ 잡는 데 정책 기조를 둔 것부터가 잘못이라는 지적도 있다. ‘강남’이란 데가 어떤 사람들이 사는 동네인지 잘 모르지만 그쪽에서는 “꼴좋다, 강남 잡으려다 정권 망했네”라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부동산이란 것의 사전적 정의 밖에 모르는 백면서생의 눈으로 보아도 부동산 광풍은 ‘잡아야 할 바람’임에 틀림없다. 그 광풍의 정체는 부동산 그 자체가 아니라 부동산 ‘투기’다. 사람들을 부동산 투기 광풍 속으로 몰아넣어 사회발전과 경제발전을 이루었다는 나라는 고금에 없다. 부동산 투기가 치부의 지배적 수단이 되는 나라는 후진국의 전형이고 망쪼든 나라다. 그 광풍은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미치게 한다. 정부만 미치는 것이 아니다. 투기 열풍이 몰아치면 서민들의 ‘내 집 한 칸’의 소박한 꿈은 물거품이 되고 성실하게 일하려던 사람들은 맥이 쫙 풀린다. 다수의 국민을 맥 빠지게 하고 살 맛 잃게 하는 사회는 어떤 의미에서도 정상적 사회가 아니다. 사람들을 투기 바람 속으로 몰아넣는 사회는 미친 사회이고 그 광풍을 방치해서 사람들을 무력감과 절망의 늪에 빠지게 하는 사회는 미친 사회다. 부동산 투기 열풍을 잡으려들지 않는 정부가 있다면 그것도 제 정신 잃은 정부다. 그러니까 투기 열풍을 잡겠다고 나선 정부의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고는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의지와 시도 자체가 틀렸다고 말하면 안 된다.
문제의 훨씬 본질적인 국면은 우리 사회가 너무도 오랫동안, 그리고 너무도 오랫동안 부동산 광풍에 휩싸여 왔다는 사실, 그리고 역대 정부들이 그 광풍을 잡으려 나서기보다는 그것을 방치하고 되레 그 광풍으로 경기부양책을 삼으려했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현 정권이 부동산 광풍잡기에 나선 것은 결코 나무랄 일이 아니다. 광풍잡기가 정상사회로 나가기 위한 본질사안이라면 그것의 방법적 문제는 사실은 정부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지혜를 모으고 정부의 정책적 노력을 도와주어야 마땅한 부분이다. 그런데 요즘 언론의 보도 자세들을 보면 본질 사안과 방법적 문제들을 일부러 혼동해서 정부를 때리고 조롱하는 데 온통 열중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도 제 정신 잃은 사회의 씁쓸한 면모다.
우리가 너무도 오랫동안 부동산 투기왕국으로 존재해왔다는 것은 사회문화적으로 심각한 문제다. 투기에 의한 재테크가 성공의 왕도로 여겨지고 어느 지역에, 그것도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사는가가 사회적 신분지위의 지배적 상징이 되는 나라는 참으로 보기 딱한, 말하자면 꼴불견의 사회다. 초등학교 아이들부터가 아파트 평수로 편 가르고 왕따놓기를 일삼는 나라는 참 볼만한 나라다. “아직도 강북에 사십니까”가 팔불출을 가리는 척도의 하나가 되는 나라, 투기로 돈 벌지 못하는 사람은 바보 중의 바보로 여겨지는 나라는 참으로 가관의 나라다. 80년대 말까지는 그래도 우리 사회에 최소한 부동산 투기로 떼돈 버는 것에 대한 심리적 저항과 도덕적 자괴감 같은 것이 있었던 반면, 90년대 이후 시대에 들어오면서 상황은 거의 완전히 거꾸로 뒤바뀐 듯하다. “아내가 자꾸 부동산 놀이를 하려고 한다. 아무래도 이혼해야 할까봐”라고 말하는 작가도 있었던 것이 80년대까지의 우리 사회다. 참 옛날 얘기 같다. 한 사회를 지탱하는 정신적 건강, 원기, ‘에토스’가 송두리째 무너진 느낌이다. 사회적 지성이란 것이 있다면 이 문제는 진작 우리의 진지한 화두가 되었어야 마땅하다.
사회적 에토스의 붕괴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운(luck)이라는 것의 조화 앞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무력감이다. 만년강사 K는 7년 전 목동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갔다가 지금도 전셋집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친구 M은 7년 전 사방에서 돈을 꾸고 보태어 같은 목동에 아파트 한 채를 마련했고 그 아파트가 지금은 7억대를 호가한다. M이 무슨 선견지명이 있어서 그때 아파트를 샀던 것도 아니고 부동산 전문가여서 지금 7억 원짜리 자산을 가지게 된 것도 아니다. “순전히 운이었어”라고 그는 말한다. 인생살이에는 운이라는 녀석의 작용력도 크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는 삶의 진실 가운데 하나다. 비디오 예술가 백남준이 한번은 뉴욕에서 어떻게 예술가로 성공할 수 있었는가라는 기자 질문에 “운 좋은 놈은 성공하고 운 없으면 안 되는 거지 뭐”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물론 아무 재능도 노력도 없이 운만으로 사람이 성공하는 아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애가 운의 작용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운의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부잣집에 태어나기’다. 복권에 당첨되듯 부잣집 제비를 뽑아 태어나는 것과 거지 집안에 태어나는 것은 달라도 너무 다른 운이고 노력과는 관계없는 우연의 작용이다. 문제는 한 사회의 집단적인 삶이 우연과 운의 작용에 크게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개인이나 집단의 삶이 운에 지배되거나 우연성의 개입을 받는 정도를 최대한 좁히려는 것이 진보-자유주의 계열의 정책 마인드다. 그래서 평등정책과 복지정책에 큰 비중이 두어지고 정부의 역할도 강조된다. 보수주의 정치철학이나 자유시장경제론은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좋은 정치라고 입 모아 말한다. 부동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시장에 맡겨두라고 시장경제론자들은 쉽게 말한다. 그러나 그 시장이 미쳤을 때는? 비정상적 시장이 사람들을 미치게 할 때는? 그 시장을 고치는 힘도 시장에서 나온다고 시장경제론은 대답한다. 그러나 그 힘이 시장에서 나오지 않을 때는? 노력과 실력은 시장경제 자체의 보상체계이고 시장경제의 작동원칙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부동산 광풍은 바로 그 시장경제의 존립 가능성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 주목되어야 한다.
[한겨레 2006-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