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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이-UCC선거의 명과 암
[열린세상] UCC선거의 명과 암
- 윤성이 /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대통령선거가 아직 10개월여 남았고 각 정당의 후보도 결정되지 않았지만,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대선정국은 이미 뜨겁다. 유력후보들의 경우 예닐곱 개의 팬클럽이 활동하고 있고, 회원 수도 수천에서 수만에 이른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사모보다도 훨씬 빠르고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정치인 팬클럽 활동을 관전하는 포인트는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무엇보다 과연 제2의 노사모가 가능할 것인가 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핵심적 선거운동 방법으로 자리잡은 정치인 팬클럽이 선거문화와 우리정치에 미칠 영향이다. 전자가 선거결과에 미치는 정치인 팬클럽의 영향이라면, 후자는 선거과정의 변화와 발전에 대한 문제이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승리의 일등공신이 노사모였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그러나 2007년 대선에서 제2의 노사모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누가 당선되든지 정치인 팬클럽을 대선 승리의 첫 번째 공로자로 꼽지는 않을 것이란 의미에서다. 그 이유는 온라인 여론의 동원이 더 이상 특정후보의 차별화된 선거전략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서너 개의 노사모급 팬클럽이 경쟁하고 있는 형국이어서 어느 누구도 온라인 공간에서의 일방적 우세를 자신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이번 대선에서 인터넷의 영향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마도 2002년 대선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할 것이며, 모든 후보들이 온라인 선거운동을 위해 막대한 자원을 투입할 것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2006년 올해의 인물로 특정인사가 아닌 ‘당신(YOU)’을 선정할 만큼 네티즌 개인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해졌다. 지난해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공화당 우세지역인 버지니아주에서 공화당 소속 조지 앨런 상원의원이 민주당후보에게 패배했다. 앨런 상원의원이 민주당 지지 청년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장면이 동영상으로 인터넷 사이트에 퍼진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올해 한국 대선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이 ‘사용자 제작 콘텐츠(UCC) 선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UCC 영향력이 지난 대선에서 보여진 인터넷 선거 파괴력의 4∼5배는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인 팬클럽 사이트에서도 UCC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미 꼭짓점 댄스와 마빡이를 패러디한 동영상이 네티즌 사이에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과거의 텍스트나 사진에 비해 동영상을 이용한 메시지 전달이 갖는 파급효과는 훨씬 크다. 많은 정치인 팬클럽들이 UCC 제작에 몰두하는 것도 네티즌들을 유입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흥미위주의 UCC가 네티즌의 관심을 유발하고 지지자를 동원하는 데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선거가 가져야 할 본연의 기능 측면에서 볼 때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대선 후 노사모 활동에 대한 평가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노사모는 분명 새로운 정치참여의 모델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과거 고리타분하고 딱딱하게만 여겨졌던 정치에 흥미와 재미를 곁들임으로써 정치참여의 문턱을 낮추는 데 기여하였다. 한편에서는 노사모의 그러한 활동양식이 정치를 오락화하고 희화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였다. 노사모에 대한 이러한 우려가 이번 UCC 대선에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노사모는 텍스트 중심의 소통양식이 지배적이었으며, 게시판을 통해 지역주의타파와 정치개혁에 대한 진지한 토론도 펼쳤다. 이에 비해 UCC가 의사소통 양식을 지배하면서 재미와 흥미에 매몰되어 선거가 갖는 본질적 목적을 망각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인기몰이가 주목적인 연예인 팬클럽과 달리 정치인 팬클럽의 활동은 공공성에 기반하여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2007-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