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황승연-논술시험 채점 믿을 수 있나
생생마당-논술시험 채점 믿을 수 있나
- 황승연 교수(영문 78/30회) / 경희대학교 사회과학부 -
주관적인 평가 논술에서 변별력 찾는 게 문제
대학입시에 모든 것을 거는 우리 사회의 풍조와 맞물려서 논술시험이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놀부의 입장에서 흥부의 생활방식을 비판해 보아야하고, 춘향과 신데렐라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찾아내야한다. 부모들은 꼭 이렇게 책을 읽어야하는지 의구심을 갖다가도 쏟아지는 논술기사와 논술학원 광고에 매몰되어 어릴 때부터 논술사고를 키워주지 않으면 자기 아이가 뒤쳐질 것만 같아서 불안하다. 또 내년부터는 대부분의 대학입학시험에서 논술을 치른다고 하고 통합논술로 간다고 하니 별도의 특별한 준비를 해야 하는지 걱정된다.
방송에서는 어느 대학 입시관계자가 나와서 학원에서 배운 논술 답안은 가려 내여서 감점을 준다고 하니 자녀를 논술학원을 보내야하는 것인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논술학원이 없는 중소 지방도시에 살거나 학원에 보낸 처지가 못 되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더욱더 불안하고 걱정이다.
교수에 따라 채점결과 다를 수도
많은 대학교수들도 입시철이면 이러한 사회의 분위기에 대해 걱정하고, 교육자로서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고민하고 논의해본 경험을 갖고 있다. 교수들의 이러한 고민과 우려들을 모아서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고, 논술시험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부담에서 좀 벗어나자는 뜻에서 지난 연말 인터넷조사를 실시했다. 논술을 치르는 전국의 대학 291명의 교수가 조사에 참여했다. 그 결과는 상당히 놀라운 것이었다. 논술시험이 대학에서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데 적합한 방법이 아니라는 의견과 고등학교의 정상적인 교육을 위해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그렇다는 의견보다 많았다. 또 논술시험이 공정하고 일관된 기준으로 채점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44.5%로 그렇다는 26.9%보다 훨씬 많았다. 교수들 또한 논술에 대하여 부담을 느끼고 크게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교수들은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시험의 채점이 논술시험의 성격 상 교수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채점의 상세한 기준이 제시되고 여러 명이 중복 채점을 한다고 하지만 창의성이나 표현력 등에 대하여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이렇게 채점된 결과 아주 근소한 1~2점 차이로 합격과 불합격이 좌우되는 그러한 상황에 대하여 교수들은 의구심을 갖는다. 서로 다른 전공과 특성의 교수들은 서로 다르게 채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우려를 하고 있고 이것이 조사결과에 나타난 것이다.
논술시험이 정상적인 교육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또 어떤 형식으로든 논술시험을 치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논술시험의 특성과 한계를 인정하고 논술시험이 순기능을 발휘하도록 시행해야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논술은 학교의 정상적인 교육을 위해 도입된 것이지 수능과 내신의 변별력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객관적인 평가인 수능시험보다 주관적인 평가인 논술시험에서 변별력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 이것이 문제의 근원이다.
공정성 확보, 국민불안감 해소
논술시험은 학교의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체계적인 독서습관을 갖고 있다면 쉽게 쓸 수 있어야 하고 1~2점 때문에 당락이 결정되는 시험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변별력을 위해서 논술시험을 치른다면 교육의 목적은 사라지고 과정만 남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이런 우려를 많은 교수들이 갖고 있음을 이번 조사에서 보았다. 따라서 논술의 채점결과가 너무 민감하게 반영되지 않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합격자의 2~3배를 논술로 미리 가려놓거나 몇 개의 등급으로 나누는 등 결과가 좀 덜 민감하게 반영되는 채점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게 생각된다.
논술시험이 교육정상화에 꼭 필요한 부분이지만 시행과정에서의 미숙함 때문에 국민들에게 부담을 준다. 시험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나 학부모들 그리고 출제와 채점을 하는 교수들 모두 정도 이상의 과중한 부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으면 한다. 이는 변별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논술시험의 궁극적인 목적을 항상 염두에 둔다면 해결할 수 있는 어렵지 않은 문제이다. 우리 사회의 성숙도가 시험받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내일신문 2007-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