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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호-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 … 느닷없는 제안 … 시기·방식 부적절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 … 느닷없는 제안 … 시기·방식 부적절
이래서 반대
- 임성호 / 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 -
개헌 논의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충분한 시간 동안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헌 논의가 격렬한 사회적 대립과 국정을 교착시킬 수 있다. 헌법은 우리 사회의 근원적 토대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문서인 만큼 가장 큰 이해관계를 낳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의는 과연 적절한 시기, 적절한 방식, 충분한 논의 시간이라는 기준에 맞는가. 먼저 시기의 문제를 보자. 대선이 있는 해에, 그리고 여당의 지지도가 바닥을 치고 있는 시점에 권력구조와 선거결과에 엄청난 여파를 미칠 개헌안을 제시하면, 이를 순수한 진정성에 의한 것이라고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국민 지지가 앞선 야당이 과연 순수하게 개헌안의 장단점을 논할 수 있겠는가.
이번 시기를 놓치면 20여 년간 개헌 논의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올해에 대통령의 제안처럼 개헌이 된다면 현 17대 의원들의 임기가 5개월 정도 단축될 것이고, 차기 정권에서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2012년의 차차기 대통령 선거가 7개월 정도 앞당겨져야 한다. 전자는 되고 후자는 안 된다는 논리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노 대통령의 개헌 논의 방식은 적절한가. 얼마 전까지 개헌 가능성을 부인하다가 느닷없이 올해 꼭 개헌을 해야 한다며 사람들의 허를 찌르는 모습은 대통령답지 않다. 사회와 정치권에서 논의가 무르익은 상황에서 개헌 발의권자로서 개헌의 방향을 제시하고 협조를 구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정답을 내가 알고 있으니 나를 따르라는 식의 일방적 하향식 논의는 국민적 공감대를 자아낼 수 없다.
개헌 논의가 충분한 시간에 걸쳐 진정한 토의로 승화되어야 한다는 명제에 비춰봐도 이번 제의는 우려를 자아낸다. 대통령도 인정하듯 헌법은 매우 근원적이며 한번 고치면 다시 고치기 어려운데, 대선 일정에 맞춰 3개월 내로 모든 논의와 국민투표를 마칠 수 있을까. 충실한 토의가 불가능하며 졸속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1987년 헌법체제를 비판하며 다른 한편으로 그 전철을 밟는다면 아이러니가 아닌가.
따라서 대통령이 개헌안에 집착한다면 정파적 동기 때문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첫째, 국정운영 실패는 대통령의 리더십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헌법의 구조적 결함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할 수 있다. 둘째, 한나라당의 내분을 조장할 수 있다. 셋째, 지리멸렬한 여당을 결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넷째, 한나라당의 반대로 개헌안이 부결되면 '반개혁의 한나라당이 개혁적인 여당을 코너로 몬다'며 국민의 동정심을 구할 수 있다. 다섯째, 기존의 선거구도를 바꾸거나 최소한 흔들며 선거판도의 반전을 노릴 수 있다.
이번 개헌안이 설혹 이런 정파적 동기보다 국가를 위한 진심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대선.총선 동시선거제가 효과적인지 의문이다. 오히려 한쪽 정파가 입법권과 행정권을 독식해 국정을 독선적으로 운영하고 견제와 균형을 파괴할 위험성이 있다. 선거전도 더 극렬해질 것이다. 대통령의 권력누수도 집권 2기에는 심각할 수 있다.
1년 전 노 대통령이 했던 말을 상기해 보자. "특정 개헌 이슈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시할 수는 있을 것이지만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개헌을 주도할 수 없다." "되지도 않을 일을 가지고 평지풍파를 만들기보다 벌여놓은 일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임기 3년 동안 한 가지 경험으로 깨우친 것은 헌법보다 정치문화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했던 대통령이 왜 입장을 바꿨을까. 정파적 동기와 아울러 무언가 자신의 족적을 남겨야 한다는 초조함이 작용했다면 걱정이다. 올 한 해가 내내 시끄러울 수 있다. 말년의 대통령은 새 업적에 집착해 무리수를 두기보다 기존 정책체계를 원활히 조정하는 데 역점을 둘 필요가 있다.
[중앙일보 2007-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