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규-역사성 간과한 '평화의 바다' 발언


동문기고 김찬규-역사성 간과한 '평화의 바다' 발언

작성일 2007-05-03
[시론]역사성 간과한 '평화의 바다' 발언                     

- 김찬규(대학원 박사과정 22회) / 경희대 명예교수·국제법 -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인 작년 11월18일 노무현 대통령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가진 한일 정상회담에서 동해 명칭을 ‘평화의 바다’, ‘우의(友誼)의 바다’ 또는 ‘화해의 바다’로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가 거절당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일파만파의 파문이 일고 있다.
청와대 측은 경색된 양국 관계를 풀어 나가기 위한 방법론의 제시였을 뿐 동해의 명칭 변경 정식 제안이 아니었고, 그 후 한 번도 이 문제가 거론된 바 없었다고 해명했으나, 동해라는 명칭이 지닌 역사성과 종래로 견지해 온 우리의 입장을 감안할 때 이런 민감한 문제를 국민적 합의 없이, 그것도 정상회담에서 거론할 수 있느냐 하는 상념을 떨쳐버릴 수 없다.

정상회담이란 문자 그대로 국가의 정상들이 만나 회담하는 자리이기에 한번 발설한 말은 되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해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그것이 방위(方位)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우리에겐 동해가 되지만 일본엔 서해가 된다는 점, 중국은 황해 및 동중국해를 동해라 호칭하기 때문에 이것과 구별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들어 바다의 명칭으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동해라는 명칭이 지닌 역사성을 간과한 견해라고 본다. 지금 동해에는 연안국의 선박 및 항공기뿐 아니라 제3국의 선박, 항공기, 군함, 잠수함까지 진출하고 있어 국제적 공간으로 변했지만 옛날에는 그것이 우리만의 인식대상이었다.

문화가 대륙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음은 역사가 증명하거니와 이러한 현상은 문화의 흐름에 선행하는 사람의 이동에서도 나타난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15세기에서 19세기까지 유럽에서 제작된 54개의 지도 중 동해를 ‘한국해’로 표기한 것이 23개, ‘일본해’로 표기한 것이 7개였고, 나머지에는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적어도 19세기까지는 ‘한국해’라는 동해 명칭이 세계적 대세였으며 이렇게 된 데는 앞서 본 역사적 사실, 다시 말해 역사적으로 그 바다가 우리만의 인식대상이었다는 게 그 이유라고 할 것이다. 우리가 이 바다를 동해라고 부르는 것은 방위적인 의미에 앞서 역사적으로 그렇게 불러 왔기 때문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동해’라는 명칭에 집착하는 것은 그것이 지니는 역사성 때문이다.

이 명칭에 굴절이 생긴 것은 1929년 일본이 국제수로기구(IHO)에 ‘일본해’라고 등재하면서부터이다. 그때는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으며 지금 옛 이름을 되찾으려는 우리의 노력은 일제 식민지 잔재를 떨쳐 버리고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려는 염원의 일환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동해라는 명칭은 정치적 또는 외교적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기필코 지켜내야 할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국제적 지명의 변경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절차가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당분간 동해와 일본해를 명기하는 것을 참을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그런데 이번 일로 해서 그러한 우리의 입장에 변화가 있는 것으로 오해될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염려되는 것은 그것이 독도 영유권에 어떤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영유권 문제에 대해 예각적 대립이 있는 독도가 ‘평화의 바다’, ‘우의의 바다’, 또는 ‘화해의 바다’ 속에 있다면 예각적 대립은 그만큼 완화되지 않을 수 없고, 그 완화가 우리 영유권 주장을 둔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상념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동해의 명칭 변경이 시사된 대통령 발언은 적절한 것이 아니었다.
 
[세계일보 2007-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