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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일-반기문과 ‘우물안 한국’
[도정일 칼럼] 반기문과 ‘우물안 한국’
- 도정일(영문 61/13회) / 문학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
반기문 전 외교부장관의 유엔 사무총장직 진출에 대한 국내 반응, 해석, 논평들을 보고 있자면 우리 사회의 소아병적 자기도취와 한국인의 깊은 ‘소인국 콤플렉스’를 다시 절감하게 된다.
한국인이, 그것도 분단국의 외교 관료가, 최대 국제기구의 행정수장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축하할 일임에 틀림없다.
-유엔총장 배출이 국가적 성공?-
국제 외교무대에서 역량을 인정받은 반기문 개인의 성취에 대해서도 박수를 아낄 필요가 없다. 이 축하와 박수라는 반응까지는 그런 대로 오케이다.
그러나 반장관이 사무총장에 진출하게 된 것은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라든가 교역량 11위의 무역대국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식의 해석에 이르면 문제는 달라진다. 한국의 ‘성공담’과 유엔 총장직을 연결짓는 것은 정말이지 “아니올시다”이다.
유엔 사무총장 자리는 강대국은커녕 국제 사회에서 힘깨나 쓰려고 달려드는 나라의 몫이 아니다. 그러기로 한다면 사무총장은 노상 유엔 안보리 이사국이나 G8 국가들에서 나와야 한다.
역대 총장들의 출신국을 보라. 전임 총장 코피 아난은 아프리카 가나 사람이고, 그 전임자 부트로스 갈리는 이집트 출신이다. 갈리의 전임 5대 총장 페레스 데 케야르는 페루, 4대 쿠르트 발트하임은 오스트리아, 3대 우탄트는 미얀마 출신이다. 1, 2대 총장을 낸 것은 노르웨이와 스웨덴이다. 이들 국가 중 구태여 국력 위상을 따지기로 한다면 이집트, 노르웨이, 스웨덴 정도만이 아주 한정된 의미에서 주요국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유엔 사무총장직을 군사, 정치, 경제 차원에서의 국력과 직접 연결시켜서 안 되는 이유는 유엔이 강국들만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관철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평화 유지, 분쟁 조정, 인권 신장, 빈곤 퇴치, 불평등 제거, 환경과 문화유산 보존, 교육발전 등이 유엔의 기능이고 목적이다.
이런 목적들은 지금이 제 아무리 보편을 말하기 어려운 시대라 해도 역사적 의미에서는 감히 ‘우리 시대의 보편 가치’라고 할 만한 것들이다. 유엔이 그런 가치들을 꾸준히 추구하자면 그 수장인 사무총장의 공정성과 중립성 유지가 필수적이다.
사무총장은 강대국 입김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우리가 반기문 총장의 진정한 성공을 바란다면 그가 세계와 인류 전체를 생각하는 능력과 시각을 키우고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지, 그를 통해 한국의, 또는 몇몇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관철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유엔 사무총장을 낸 나라의 국민이라는 것에 은연 중에라도 자부심 같은 것을 갖고 싶다면 우리들 자신이 자기 나라만 생각하는 좁직한 국민주의적 우물을 벗어나 세계와 인류 전체를 시야에 둘 줄 아는 국제 감각부터 몇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필요가 있다.
-국제기여 관심부터 키워야-
국제 감각에 관한 한 우리는 자랑할 것이 별로 없는 나라다. 세계의 빈곤퇴치, 불평등 제거, 환경 보전, 인권 신장 등 보편가치에 대한 한국의 기여도는 극히 미미하고 그런 가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토론 수준도 거의 바닥권이다. 매체도 그렇다. 신문에서 이렇다 할 ‘국제’ 섹션을 보기 어려운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우리가 반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진출을 어떤 도약의 계기로 삼자면 그것은 우리 자신부터 그 유명한 ‘우물안 개구리의 만족’을 벗어날 줄 아는 차원으로 성큼 올라서는 일일 것이다. 이건 우리의 신년 화두감으로도 충분히 중요한 문제다.
[경향신문 2007-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