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준 - 천문학계의 정치게임


동문기고 김상준 - 천문학계의 정치게임

작성일 2006-11-13

[과학칼럼] 천문학계의 정치게임
 
김상준 (경희대 교수·우주과학과)

1주일 전 국제 천문학회는 정기회의에서 명왕성에 대한 행성지위 박탈을 결정하여 이제 행성의 수는 기존의 9개에서 8개로 줄어들었다. 따라서 이제 초·중·고등학교 교과서도 교정해야 될 판이 되었다. 1930년 미국의 톰보 박사에 의해 발견된 이후 70여년간 초등학교 때부터 우리에게 친숙한 명왕성에겐 너무나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틀 전 미국의 일부 행성천문학자들은 명왕성의 지위 박탈은 부당하다고 전 세계 천문학자들에게 e메일을 보내면서 이 결정을 번복시키고자 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그럼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90년대 초까지 이런 문제는 없었다. 문제의 시작은 92년 미 하와이 대학교 제인 루라는 여성 천문학자와 그의 지도교수인 주잇 박사에 의해 명왕성 밖에서 지름 약 320㎞의 한 물체를 발견한 것이다. 제인 루 박사는 베트남 출신으로 초등학교 때 망해가던 베트남을 부모와 함께 조각배로 탈출하여 미국으로 망명한 뒤 하버드 대학교 교수까지 지낸 입지전적 천문학자이다. 그 이후 현재까지 명왕성 밖에서 100개 이상의 이런 물체가 발견되었고, 이런 물체군은 카이퍼 벨트 물체군이라고 명명되었다. 그 중 커다란 물체는 명왕성 크기인 2,300㎞에 접근하였다.

-美 명왕성 지위 번복 움직임-

그러나 기존 외행성들의 크기는 상당히 크다. 목성이 14만㎞, 토성이 12만㎞, 천왕성과 해왕성이 약 5만㎞이다. 따라서 천문학자들은 명왕성과 그의 위성 샤론(지름 1,200㎞)은 이런 외행성들과는 다른 카이퍼 벨트 물체군에 속하고 그들 중 커다란 것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런 명왕성 지위에 대한 논의는 이미 90년대 말 국제 천문학회에서 논의되었었다. 이 논의에서 명왕성이 카이퍼 벨트 물체군에 속하는 것은 옳지만 오랫동안 행성의 지위에 있었으므로 전통적인 것도 중요하므로 명왕성만은 예외로 하자고 결정하였다.

그런데 2003년 미국의 브라운 박사에 의해 명왕성보다도 큰 카이퍼 벨트 물체 2003UB313(일명 제나)를 발견하였다. 이에 미국 천문학자들은 90년대 말 국제천문학회의 결정을 무시하고 같은 미국 천문학자인 브라운 박사의 발견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이 물체를 행성으로 격상시키자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너무 속(?)이 보이니까 명왕성의 위성 샤론과 소행성 중 가장 큰 시러스(지름 930㎞)도 행성으로 격상시키자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유럽, 아시아 천문학자들은 미국에 반기를 들었다. 오히려 90년대 말 국제천문학회의 결정을 기왕에 파기하겠다면 명왕성은 과학적으로 외행성과 현저히 다르므로 올바른 분류를 하자면 행성의 지위에서 박탈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1주일 전 전체회의 표결까지 간 뒤 미국 천문학자들의 안은 폐기되었고 오히려 명왕성은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한 것이었다. 미국의 천문학자들로선 그대로 두었으면 미국 천문학자 톰보 박사가 옛날 발견한 명왕성은 행성으로 그냥 남아 있으련만 혹 떼려다 혹 하나를 더 붙인 꼴이 되었다. 이제 와서 전 세계적으로 억울함을 탄원하고 있는데 모양새가 좋지는 않다. 특히 카이퍼 벨트 물체 시초 발견자 제인 루 박사는 같은 미국인이면서 유색 인종이라는 이유로 미국 내에서 많은 차별을 받아 하버드 대학교에서 정년보장을 못 받고 결국엔 천문학을 그만둔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 생각에 그의 발견은 명왕성 발견에 버금가는 천문학 역사상 쾌거였었다. 미국 천문학자들에게 묻고 싶다. 천문학계가 보수적인 면이 강하지만 만약 브라운 박사가 베트남계 미국인이었다면 과연 미 천문학자들이 모두 나섰을까?

-유색인종 차별 받은 루박사-

가끔 국내에서든지 외국에서든 필자가 천문학자인 것을 알고는 하늘만 연구하니 속세를 떠나 이슬만 먹고 고고하게 사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천만의 말씀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천문학자들도 인간이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천문학자들도 하늘 보는 시간보다는 땅 보는 시간이 많은 인간의 굴레에서 벗어나긴 힘든가 보다. 물론 잿밥보다는 염불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 훌륭한 천문학자들도 있지만 말이다.

- 경향신문 2006년 9월 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