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김동언 - 요리사가 된 극장장
요리사가 된 극장장
--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處暑)도 지났건만 한낮의 기온은 여전히 30도를 웃돌고 있다. 수해와 무더위를 내버티며 릴케의 고백처럼 지난여름이 위대했음을 보여주려는 우리 모두의 여름나기는, 힘겹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숭고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문화예술계도 방학과 휴가철이라는 시기적인 요인을 적극 활용하여 전국 곳곳에서 축제 만들기에 기꺼운 땀방울을 쏟았다. 아직도 이런 축제를 사사로운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춘천인형극장의 강준택 극장장을 통해 축제 본래의 ‘함께 즐기는 판’을 만드는 축제형 리더의 존재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기쁨이었다.
그는 축제기간 내내 이른 새벽부터 극장으로 출근했다. 외국인 출연진과 축제 스태프들의 아침 식사를 직접 준비하는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였다. 극장 부속공간인 카페에서 근사한 호텔 뷔페가 부럽지 않을 만큼 정성으로 마련된 아침식사는, 축제 장소나 숙소 주변에서 입맛대로 변변하게 식사를 하기 어려운 외국인 참가자들이나 스태프, 국내공연단들이 어울려 함께 하면서 참가자, 관객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진정한 축제를 위한 준비의 자리가 되었다.
늦은 밤, 공연이 끝난 뒤에도 그는 출연진과 스태프, 그리고 수고한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조촐한 맥주 파티의 시중을 드는 종업원의 역할을 하였다. 올해로 18년째를 맞는 춘천인형극제의 명성은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이 축제지향성의 문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창의성이 국가 경쟁력이 되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를 생각해 보는 귀한 기회가 되었다. 창의성이 살아 숨쉬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일이 축제가 되고 축제가 일이 되는 신나는 문화가 필요하다.
요리사가 된 극장장처럼 그들만의 축제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춤추고 노래하고 삶을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을 마련하는 축제형 리더가 많아지면, 이윤택의 책 제목처럼 ‘살아있는 동안은 날마다 축제’가 되는 날도 꿈만은 아닐 것이다.
- 중부일보 2006년 8월 25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