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조정원-태권도를 통한 밝은 사회운동의 세계화 전략
< 태권도(跆拳道)를 통한 밝은 사회운동의 세계화 전략 >
- 조 정 원 (경제66/ 18회, 세계태권도 연맹총재) -
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6월 9일부터 10일까지 대전의 유성관광호텔에서 개최된 밝은 사회국제클럽한국본부의 제 24회 <밝은 사회 지도자 수련회>에서 행한 전임 경희대 총장이며 현재 세계태권도연맹 총재인 조정원(趙正源) 교수(정치학박사)의 강연내용이다. 밝은 사회의 문화사랑클럽 회장으로서 이 수련회에 참가했던 사학과의 명예교수인 신용철(申龍澈)동문(사학과 6회/ 전 12회)이 그 내용의 요점을 정리하였다.
1. 조 영식 밝은 사회국제본부의 총재님을 생각하며
존경하는 밝은 사회 지도자 여러분, 이처럼 뜻 깊은 자리에서 여러분들을 뵙게 되어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더욱이 이처럼 훌륭한 자리에서 말씀드리게 된 것을 무한 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를 초청해주신 밝은 사회 한국 본부의 이병하 총재님께 감사드리며 특히 이 수련회를 준비한 모든 관계자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15일전 이환호 사무국장님으로부터 초청을 받으면서 마음 한 구석이 매우 서글픈 것은 우리의 밝은 사회운동을 시작하시고 발전시켜 오신 조영식(趙永植) 밝은 사회국제클럽국제본부의 총재님께서 이 자리에 참석하시지 못해서입니다. 개회식의 신대순 사무총장 명상 인도시간에도 제 마음은 다른데 데 가 있었습니다. 지난 1974년의 미국 보스톤의 제 4차 세계대학총장회의에서 국제 밝은 사회운동의 선언과 1979년의 출발 등의 기회마다 항상 조영식 총재님과 함께 참여했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지나며 제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누국보다도 이 자리에 먼저 달려오시고 싶으시나 아직 병상에 계신 우리의 영원한 총재님의 조속한 쾌유를 기원하면서 다같이 함께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박수)
지금 밝은 사회운동은 전 세계의 41개국에 83개 클럽, 국내에는 4300여명의 회원을 가진 세계적 조직으로 널리 확산 발전되었습니다. 참으로 커다란 성과이며 우리 모두가 축하 할 일입니다. 사실 저도 군대에서 다른 많은 한국의 남자들과 같이 처음으로 태권도를 만났지만 유단자는 아닙니다. 제가 외국에서 태권도의 경기에 접한 것은 1972년 미국에서였습니다. 아는 분이 운영하는 태권도의 도장에 들렸는데, 넓은 도장의 정면에 태극기가 걸려있고, 우리말의 구령에 따라 움직이는 미국인들을 보면서 커다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문화 스포츠의 브랜드라고 생각했습니다.
2. 경희대학교의 태권도학과와 세계태권도연맹
저는 지난 2004년 6월 11일 인천에서 세계태권도연맹의 제 2대 총재의 잔여임기를 맡도록 투표로 선출되었습니다. 저로서는 새로운 세계에 도전한 셈입니다. 지난 10년간 경희대학교의 부총장과 총장으로 학교의 행정을 맡아왔던 제가 어떤 관계로 세계태권도연맹의 총재를 맡게 되었는지에 대해 아마도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이 많이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우선 이 자리에서 저는 대학의 행정가로서 경희대학교의 체육대학에 태권도학과를 1983년 한국 최초로 설치하는 주역이었음을 말씀드립니다. 그 후 저는 깊은 애정과 열성으로 태권도의 발전과 세계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습니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최초의 이 4년제 대학의 태권도 학과의 설치는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문교부는 4년제 대학에 어떻게 태권도학과가 설치될 수 있느냐로 처음에는 승인을 받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체육대학 안에서도 축구나 배구, 논구, 야구등도 하나의 학과가 가능한가의 반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1964년 도꾜 올림픽이후 일본의 유도학과 설치의 실례를 들어 태권도는 진정한 한류이고 한국문화의 진수인데 우리의 국기인 태권도가 종주국인 한국에서 왜 학과를 설치 못하느냐고 강조하며 그들을 설득하여 학과의 설치를 성사시켰습니다. (박수)
제가 2004년 6월 10일 전임자의 후임으로 전 세계태권도연맹의 제 2대 총재의 잔여임기를 맡은 후, 2005년 4월 다시 임기 4년의 3대 총재를 맡게 되면서 우선 당면한 과제는 태권도를 올림픽경기의 종목으로 계속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해 7월 싱가폴 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태권도의 올림픽 종목으로서의 존속에 대한 결정이 있을 예정이어서, 당시의 제 생각으로는 만일 이 일이 실패하면 저는 더 이상 한국에 살 수 없다는 최후의 생각도 했습니다. 전 세계 중 태권도가 없는 나라에서나 살 수 있다는 각오로 (세계에서 거의 찾기 힘든)태권도가 없는 나라에서나 살 수 있다는 비장한 각오였습니다.
세계 태권도 연맹의 총재로서 저는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습니다. 우선 2008년 북경 올림픽까지 태권도의 종목이 보장되어있지만 그 후에는 다시 IOC위원회에서 다시 논의해야합니다. 지난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보셨지만, 경기의 흥미와 심판의 공정성과 객관성 등 개선해야 할 많은 과제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정하고 과학적인 심사를 위해 전자감응장치의 활용이나 심사개선위원회를 구성하여 투명성이나 흥미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2008년의 북경 올림픽 후 2009년 우리는 다시 이 문제를 논의하게 됩니다. 2016년까지만 올림픽에서 종목으로 유지될 수 있다면 그 후의 미래는 밝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태권도를 흥미 있고, 투명한 경기로 국제화시켜야하는 과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3. 세계속의 한류, 태권도의 열풍
친애하는 지도자 여러분! 반만년 역사의 유구함을 자랑하는 한국이 언제 세계 속에 과연 "KOREA"로 언제, 얼마나 많이 알려졌습니까? 그리고 그것은 무엇으로 알려졌습니까? 사실 1950의 6. 25전쟁 전, 세계에서 한국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의 앞선 세대는 바로 세계인은 한국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무대에서 싸워야하는 어려운 경험을 했습니다. 우리에게 전쟁은 비참하고 쓰라린 경험이었지만, 한국의 전쟁과 분단을 통해서 우리나라는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88년의 올림픽대회에 이어 2002년의 월드컵 축구 경기로 우리는 세계에 더욱 더 알려지고 있습니다.
2005년 가을에는 프랑크푸르트의 제 57차 국제도서전의 주빈국(主賓國) 으로서 우리의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렸고, 삼성과 LG 현대 등의 대기업들이 지금 전 세계 속으로 우리 한국을 몰아넣고 있습니다. 지금 한류(韓流)가 중국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에 불기 시작했습니다. 한류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한국 문화의 진수를 세계에 알리고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진정한 한류로서 그리고 우리 한국문화의 진수로서 태권도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기를 이 자리에서 제의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여러분들이 그처럼 열심히 추구하는 밝은 사회운동의 진정한 국제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그 동안 저의 국내와 국제적 경험을 기반으로 태권도에 관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세계에는 203개의 국가가 있고 191개국이 유엔에 가입하였고 IOC의 회원국은 203개국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태권도가 전파된 나라는 173국에서 181국으로 늘었으니 거의 유엔 가입국가와 비슷합니다. 한국의 도복을 입고, 한국어로 구령이 불리는 자랑스러운 한국문화의 진수입니다. 이 태권도의 초기 해외 전파에는 커다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일본의 가라대 와 유도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맨손으로 도장의 관장과 싸워 가라대와 유도를 이겨야만 자리를 잡을 만큼 일본의 텃세가 심했습니다.
총재를 맡은 후 저의 경험을 좀 말씀드릴까합니다. 태권도는 단순한 무술이 아니라 정신과 교육과 올림픽의 스포츠라는 삼대 요인이 결합되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최근 이란에 들렸습니다. 우선 어떻게 이란이 그처럼 국제대회에서 태권도의 강국인가를 알고 싶었고, 최근 핵문제로 서방세계로부터 왕따 당 할 정도로 비난과 논쟁에 휩싸이는 나라의 참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이란의 수도인 테헤란 로의 교통체증은 마치 우리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 보다 더 심했습니다. 그런데 길거리를 달리는 70%의 자동차가 우리나라의 기아자동차였고, 휴대폰 등이 아주 널리 사랑받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제품인 TV와 냉장고 등을 도처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나는 3500곳의 태권도장이 있다는 말을 듣고 아주 놀라면서 흐뭇해서 기뻤습니다. 미국 등 서양의 세력이 주춤한 틈새에 우리는 경제와 문화면에서 이렇게 진출한 것입니다. 경제이건 문화이건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전략이 되어야합니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태권도는 바로 이 전략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태권도의 인구가 무려 120만이라고 합니다. 이보다 더한 한류가 또 어디 있습니까? 한국의 도복, 한국의 구령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이 진정한 한류이며 한국의 문화입니다. (박수)
아프리카의 콩고는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태권도의 시범경기를 보고 돌아가 태권도 협회를 만들어 직접 회장을 맡았습니다. 태권도의 수련도 없이 어떻게 회장을 맡느냐고 물었더니 배우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외국인도 태권도를 배우는데 열성적입니다.
레바논에서는 최고 통치자의 사위이며 국방장관이 태권도의 회장으로 관심이 크고, 시리아등의 우리와 아직 국교를 수립하지 않은 미수교국가에도 태권도는 이미 들어가 한국관의 문화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아랍 에미리트의 공주는 올림픽에 출전도 한 태권도선수로서 이 나라에서는 국왕 배 국제태권도 선수권대회가 2회째 개최되고 있습니다.
한편 히말라야산맥의 아래 있고 스위스만한 즉 우리 대한민국의 3분의 1밖에 안되는 작은 왕국인 부탄은 매우 아름다운 나라여서 늘 가고 싶었습니다. 이 부탄에서의 경험은 특히 제게 매우 감동적이고 고무적이었습니다. 공항에서 내려 호텔로 가는 도중, 길 양 옆으로 태권도의 도복을 입고 늘어선 700여명의 학생을 보면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타고 가던 차에서 내려 걸으면서 악수하고 격려해주었습니다. 60만의 인구에 태권도를 하는 사람이 1만 6천명인데 이를 3만 명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듣고 매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4. 문화적 복지사회(국가적 행복지수)의 건설
라마교와 불교의 이 작은 나라 부탄에서 저는 우리의 밝은 사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국민소득이 많아서가 아니라 삶을 만족하는 점에서 부탄은 국민행복지수가 세계의 제 1위입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행복의 지수는 과연 어떠한 것입니까? 저는 얼마 전 SBS 가 조사한 행복지수가 바로 이 부탄을 세계의 최고로 꼽은 것을 기억합니다. 국민소득(GNP)도 중요하지만 국민행복지수(GNH-Gross Nation Happyness)도 더욱 중요합니다. 기념품으로 넥타이를 갖고 갔던 저는 남. 여가 모두 치마를 입은 것을 보고 넥타이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남자의 치마는 짧고 여자의 치마는 길어서 한 체육관계자는 제게 국왕을 만나면 여성의 치마를 좀 짧게 해달라는 건의를 부탁해서 웃었습니다.
각 나라의 문화적 차이를 생각하며 고유한 문화의 귀중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부탄의 초청자인 부탄 올림픽위원장은 저에게 밤에 개 짖는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잠자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해서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별로 시끄럽지도 않은 도시인데 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 밤중에 한 마리의 개가 짖기 시작하니, 수십 마리의 한꺼번에 짖어 한국에서 온 손님에게 인사했습니다. 여기 와 계시지만 사학과 신용철교수의 저서에서 “밤중에 따라 짖는 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불교의 국가로서 개를 잡아먹지 않고 놓아기르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닭 우는 소리 및 개 짖는 소리와 더불어 사는 대자연속의 평화로운 삶을 생각해봅니다. 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7,500m의 히말라야산맥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가는 도중,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고 남아서 태권도 연습을 하다 도복을 입은 채 걸어가는 7. 8명의학생들을 보고 참으로 흐뭇했습니다. 이 깊은 산속에서 한국의 도복을 입은 학생들을 만다다니 꿈만 같았습니다. 나는 그들을 격려하면서 줄 것이 너무 없었지만 모두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저는 우리 밝은 사회운동이 목표로 하는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의 조화인 우리가 만들어야 할 “당위적 요청사회(Oughtopia)"를 생각했습니다. 비정부의 국제적 사교 단체인 ‘라이온스’나 ‘로타리’ 클럽처럼 우리의 태권도 역시 세계적인 모임이 될 수 있는 기반이 지금 착착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전 세계의 태권도인들, 특히 가난한 나라의 태권도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벌의 도복이나 매트라도 아주 유용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조영식 총재님과 함께 밝은 사회운동에 노력하면서 그의 발전한계를 느낀 적이 이 있습니다. 학교와의 관계, 도는 동문들의 힘만으로는 소기의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한계를 알게 된 것입니다. 밝은 사회운동은 그 나라의 사람들에 의해서만이 보다 효율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의 태권도야말로 그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존경하는 지도자 밝은 사회의 여러분! 밝은 사회운동의 범세계적 확산과 발전을 위해서 세계태권도연맹을 이용하십시오. 그러면 이것은 밝은 사회운동뿐 아니라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마찬가지로 태권도의 발전을 위해서도 커다란 공헌이 될 입니다.
태권도가 올림픽의 종목으로 채택되고 세계태권도연맹의 총재를 아직 우리가 맡고 있지 만 그것은 결코 영구적이 아닙니다. 다른 나라들은 언제든지 이를 맡을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일본이 1964년 이후 세계유도연맹 총재를 맡고 나서 유럽 등의 다른 나라를 거쳐 지금 우리 한국의 두산그룹의 박용성 총재가 계승한 것이 바로 그의 실례입니다.
이제 태권도는 세계 속에 그의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착실하게 가꾸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태권도는 우리의 것만이 아닌 전 세계인의 것이 되었습니다. 한 지역의 종교가 범세계적인 신앙으로 확산 정착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범세계적인 봉사 사교의 모임인 라이온스나 로타리 클럽 등은 우리나라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모두 외국으로부터 들어 온 것입니다. 밝은 사회운동만이 유일한 우리의 것입니다. 전 세계 41개국에 진출한 밝은 사회운동의 GCS(선의, 협동, 봉사)운동이 최초입니다. (박수)
우리의 태권도가 세계의 181개국에 시집갔다고 생각하십시오. 시집간 딸이 잘 사는 것은 모든 친정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그곳에서 아들 딸 낳고 잘 살도록 우리의 친정인 한국이 열심히 돌보아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한번 밝은 사회의 지도자 여러분들께 “ 태권도와 함께 밝은 사회 운동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의 고유한 문화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한국문화의 세계화이며 아울러 선의와 협동과 봉사를 통한 지구사회의 건설”이란 원대한 목표에 이르는 길이 될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를 이 자리에 초청해주신 이병하 총재님과 밝은 사회의 관계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제 시간을 마차면서도 이 자리에 참석 못하신 조영식 총재님의 쾌유를 다시 여러분과 함께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