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김준일-김종림 선배님을 추모하며
< 김종림 선배님을 추모하며 >
김 준 일 (법학60, 12회, 총동문회 부회장)
-- 지난 9월 30일 작고한 고 김종림 총동문회 고문의 49제 추모식이 11월 17일 흥사단에서 열렸다. 이 글은 추모식을 다녀온 김준일 동문이 고인의 생전을 생각하며 쓴 글이다 --
한해의 시작이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덧 계절의 끝물을 맞이하였습니다.
세월이 유수라 하더니 우리의 인생도 덧없이 짧다는 생각과 함께 살아 있을 때 더 많은 것을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여 봅니다.
교회력으로는 매해 이맘 때쯤이면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하여 언젠가는 마감해야 할 자신들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서도 묵상하도록 초대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늦가을 낙엽처럼 어디론가 훌쩍 떠나 그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하고 싶은 계절이기도 합니다.
못 다한 사랑과 애절한 그리움! 그것은 우리 곁을 떠나 저승으로 가신 김종림 선배님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생전의 그 형님의 값진 삶에 대한 존경과 부끄러움 때문에 더욱 자신의 마음을 저리게 하는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선배님의 갑작스런 비보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지만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제 다시는 우리와 함께 곁에 계시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때를 알고 가족과 함께 조용히 임종을 준비하셨고 4.19 묘지에 안장되기를 마다하면서 이 세상에 왔다간 흔적을 남기지 않게 해 달라는 유언에 따라 화장으로 마감한 그분의 생애는 평소 입버릇처럼 인생은 짧고 굵게를 외치시면서 술잔을 기울이시던 모습대로 정말 잘 살았던 삶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분의 삶은 청빈, 검소, 정의와 의리 너그러운 포용력과 넉넉한 마음으로 엮어진 한편의 드라마 같은 여정이었습니다.
지위나 명예가 높지도 않았고, 돈이 많은 부자도 아니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항상 그분 곁에 함께 있었습니다.
그분은 일찌기 4.19 혁명대열에 앞장섰고, 적재적소에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남다른 열정과 신념으로 일생을 보내셨습니다.
법대 동문회 회장당시 장학 기금을 조성하여 기반을 조성을 하셨고, 모교에 대한 남다른 애정, 그리고 총동문회 고문으로 모교의 발전과 동문회 활성화를 위해 열정적으로 봉사하신 김종림 선배님을 우리는 잊을 수 없습니다.
지난 11월 17일 흥사단에서 마련한 추모식에서의 선배님에 대한 추모사는 구구절절 듣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고 그 중에서도 연변에서 오신 분은 200만 조선인에게는 등불과 같은 희망이었고 평화의 사절로 큰 어른이셨는데 이제는 영원히 그분을 뵐 수도 없고 그 명 스피치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고 애절함을 토로 했습니다.
모든 분들의 추도사가 한결같이 그분의 숭고한 삶과 남기고 가신 모든 흔적을 소중한 유산으로 받들자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이날 고인의 평소 유업에 보탬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흥민통에 발전기금을 전달하는 미망인의 모습에서 우리 모두는 숙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장례식을 마친 몇일 후 어느 날 형수님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마침 어젯밤 그이를 만났는데 깨어보니 꿈이었다고 하시며 허전한 마음으로 보고 싶어 편지 1통을 써놓고 망연히 앉아있던 참이었다고 하시기에 뭐라고 쓰셨냐고 여쭈었더니 "당신 참 미워! 나쁜 사람! 그런데 참 보고싶네요" 하시면서 울먹이시더군요.
모든 사람들이 그리운데 그 형수님의 마음이야 어떠실까? 짐작이 가네요.
이제 그분께서는 비록 우리들의 곁을 떠나가셨지만 생전의 남기고 가신 값진 유산은 우리 모두에게 길이길이 두고 삶의 영양으로 수용되리라 봅니다.
이제 가지를 등지고 떨어지는 낙엽은 내일의 거름이 되고 나무는 자신을 알몸으로 겨울을 준비합니다.
머지않아 서리가 내리겠지요!
지금 내가 사랑해야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기뻐할 줄 알고 사랑할 수 있다는 능력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늦가을 쌓여가는 낙엽처럼 우리 모두 사랑할일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영원한 안식을 취하시도록 형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