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의 유산3-경희의 알림터


동문특별강좌 경희의 유산3-경희의 알림터

작성일 2005-11-08

경희의 유산을 찾아 (3)

< 경희의 알림터 >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은 1966년에 불국사 석가탑 2층 탑신에서 발견된 751년경의 {무구정광다라니경(無垢淨光陀羅尼經)}이다.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은 불심으로 몽고의 침입을 막기 위해 강화도에서 1236년부터 16년간에 걸쳐 81,445장의 경판을 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인쇄물의 대부분이 전란으로 소실되자 놋쇠의 해감 모래 주조법이 나왔다.
고려말기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찍어낸 {직지심체요절}(1377)은 독일의 구텐베르그 활자보다 70여년 빨리 인쇄된 것이다.
조선 초에는 주자소를 설치(1403)하고 동활자를 만들었다.
최초의 한글 금속활자 인쇄물은 {월인천강지곡}(1447)이다.
본교 박물관도 조선시대의 청동활자와 목활자 등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활자를 이용한 신문 형식의  朝報는 16세기 부터 있었다.
한국 최초의 신문은 개화당이 박문국에서 발간한 {한성순보}(1883)이다.
독립협회의 기관지인 {독립신문}(1896)은 민족 자주 정신의 함양과 신지식 개발에 앞장서 애국계몽운동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 외에 {매일신문}, {황성신문}, {제국신문}, {대한매일신보}, {만세보}, {대한민보}, {경향신문} 등이 관보를 중심으로 국내외의 시사를 곁들이고 서양의 문화를 소개하기도 하였다.
이들 신문들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발간이 중지되기도 하였다.
경희학원내의 인쇄문화로는 {대학주보}를 비롯하여 {The University Life}(58. 5. 18), {대학원보}(86. 2. 3) 등이 있다.
{대학주보}는 민주언론의 창달, 학생들의 연구열 고무, 발표력의 육성, 대학교육이념의 구현, 전체의사의 정확한 반영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처음에는 {신흥대학보}(55. 5. 12)로 창간되어 {경희대학주보}(60. 3. 25)를 거쳐 {대학주보}(6. 30.)로 정착되었고 현재와 같은 가로쓰기는 800호(84. 4. 2.)부터 시작되었다. 앞으로 경희인의 벗인 {대학주보}는 경희건설을 위한 대화의 광장으로서 사명을 다해 갈 것이다.
이 외에 13만 경희 동문이 협동심과 일체감 및 친목 도모 등의 유대 강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총동문회보}가 있다.
1955년 총동문회가 발족한 이래 홍보책자나 신문 형식의 소식지가 있었는데 1968년에 이르러 {경희회보}(12. 27.)로 창간되었다.
그 이후 개교 30주년을 기념한 1979년 9월에는 {경희회보}가 정기간행물로 등록되었다.
84년 제 28호부터는 가로쓰기 방식으로 전환하였고 92년 제 83호부터는 매호 12면, 101호부터는 16면으로 발행하고 있다.
 현재 109호가 발간되고 매월 3만 5천부 이상을 발행하고 있는 {총동문회보}는 학내의 소식과 졸업 이후 동문들의 근황을 전해주면서 13만 경희동문을 하나의 경희가족으로 묶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또 동문회에서는 또한 회원명부의 발행이나 {경희요람}, {경희동문록} 등을 간행하고 있으며 경희 동문들의 영원한 우정과 상호 유대 강화를 위해 매년 '경희인의 밤'을 개최하여 모교 및 동문회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머지 않은 개교 50주년을 바라보고 있는 이 때에 이러한 경희의 알림터들은 경희인들이 경희의 이름으로 세계로 웅비하며 21세기를 선도하는 우수한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힘을 주고 지표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총동문회보}는 사회에서 역사를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되고 있는 경희공동체를 확인하고 이를 발판으로 경희학원의 위상을 높일 수 있도록 작용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오일환 연구원 (109호 동문회보 게재- 1997년 10월) --

*참고: 2005년 11월 현재 동문회보는 약 6만부 발행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