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김지영 기자] 다산이 육십 년 공부를 비우고, 처음부터 다시 채우고자 읽은 마지막 책, 『소학』 왜 어른들이 단풍 앞에서 오래 머무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만큼 살아온 다음에야 그 까닭을 알게 되었다. 절기의 반환점을 돌아 떨어지는 잎들이 애틋하기 때문이다. 거둘 때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뒤를 돌아보며 남은 길을 가늠하게 된다. 그래서 주변의 모든 것이 새삼스럽고 사무치다.
어른이란 거쳐 온 길만큼 삶의 더께들이 나이테로 내려앉은 존재다. 비바람을 견디면서 경험이 축적되고 만사에 익숙해지면서 특별했던 사건들이 어지간한 일이 된다. 그것을 내공이라고 여겨왔지만, 문득 이런 의심이 든다. 내가 지혜라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편견은 아니었을까? 세월에 단련되어 단단해진 것이 아니라, 세월에 길들여져 딱딱하게 굳어진 것은 아닐까? 나를 형성한 나이테에 갇혀 그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밟고 있는 곳이 인생의 정점임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성취감보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익숙해서 습관이 되어버린 일상들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인생의 하강곡선을 그릴 것 같아서다. ‘고인 물’이니 ‘라떼는 말이다’라는 유행어에는 이러한 정체감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다산의 마지막 습관: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청림출판, 2021.06.21.)』은 내가 굳어지고 텅 비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우울함으로 번질 때 펼쳐보고 기댈 수 있도록 마련한 오래된 조언이다. 『다산의 마지막 공부』와 『천년의 내공』의 저자 조윤제가 다산이 학문의 마지막에서 육십 년 내공을 비우고 새롭게 시작한 공부, 『소학』의 주요 구절 57가지를 가려 뽑아 오늘날의 감각에 맞게 풀었다.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것, 나를 찾기 위해 나를 비우는 마지막 습관
“궁리란 심오한 이치를 깊이 공부하며 만 가지 변화를 두루 섭렵하는 데 이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날마다 일상에서 행하는 평범한 도리를 헤아려 말없이 마음속에서 나누어 살피는 것이다.” _다산 정약용
그동안 걸어왔던 길에 길들여졌다고 느낄 때, 쌓아왔던 내공을 남김없이 쏟아내 고갈되었다고 느낄 때, 우리는 세상의 속도에 뒤처지지 않고자 달음박질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이니 ‘뉴노멀’이니 시기마다 표현만 달라진 구호들에 떠밀려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채우는 데만 급급해지곤 했다.
그러나 《소학》에서는 그런 것이 성장이나 새로움이 아니라고 말한다. 성장이란 도태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자 노력하는 습득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하기에 살아가면서 잃어버렸던 가르침을 되찾아 하루를 충실히 사는 자세를 몸에 길들이는 습관이고, 그러한 습관을 들이기 위해 지금까지 몸에 배인 모든 습관을 비우고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꼽는 《소학》의 핵심 가운데 대표적인 가르침은 정리와 인사와 같은 시시한 일에 대한 강조다. 《예기》에는 “아침이 되면 몸을 정돈하고 이부자리를 갠 다음 마당에 물을 뿌리고 청소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어찌 보면 시시하고 뻔한 이야기를 은밀한 진리라도 속삭이듯 진지하게 권하기에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매일 행해야 하는 사소한 습관이라는 지점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가르침이기도 하다. 《논어》에서 공자는 “일상에서 시작해 심오함에 도달했다(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라고 말했다. 자기 집 쓰레기 분리배출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는 태도는 어딘지 공허해 보인다.
하늘에 닿는 높은 사유도 그 시작은 현실이라는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자신이다. 인간이란 이상이 아니라 살아낸 사소한 일상들로 이뤄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증명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완성할 수 없다.
그래서 다산이 환갑에 이르러 《심경》으로 마음공부를 마친 다음 과정은 일상의 소소한 순간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다산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어렸을 때의 가르침을 그제야 삶에 적용했다.
새벽에 일어나면 마당에 비질을 하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봤다. 《소학》이 권한 대로 이리 오래전에 내려놓았던 글을 다시 읽으며 복사뼈에 구멍에 세 번 날 정도로 글쓰기에 매진했다. 그리고 누런 콧물을 흘리는 동네 아이부터 이름 없는 촌로에 이르기까지 함께 사는 이웃들에게 예의를 다했다.
자신을 만들어나간 습관들을 모두 비우고 평생 동안 지켜나갈 단 하나의 습관을 새로 들이는 것, 그것이 다산이 매일 새로워지며 평생 성장해나가기 위해 택한 방식이었다.
저자 조윤제는 고전연구가.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마케팅실, 삼성영상사업단 ㈜스타맥스에서 근무했다. 이후 출판계에 입문해 오랫동안 책을 만들었으며 지금은 책을 쓰고 있다. 탐서가로 수많은 책을 열정적으로 읽어왔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논어》 《맹자》 《사기》 등 동양 고전 100여 종을 원전으로 읽으면서 문리가 트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저서로는 《다산의 마지막 습관》 《다산의 마지막 공부》 《천년의 내공》 《말공부》를 비롯해 《논어 천재가 된 홍 팀장》 《적을 만들지 않는 고전 공부의 힘》 《내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 《인문으로 통찰하고 감성으로 통합하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