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신용철-이승복 사건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다
< 이승복 사건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다 >
** 역사는 억지로 만들 수도 없고 마음대로 지워버릴 수도 없는 것 **
- 신용철 (사학60/ 12회, 경희대 명예교수·중국사) -
지난 24일 ‘이승복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있었다. 1968년 12월 11일, 조선일보는 이틀 전인 9일에 강원도 평창군에서 9살의 어린 소년 이승복이 4명의 가족과 함께 북한의 무장 공비에게 무참히 학살된 사건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어린 항거 입 찢어’란 제목으로 보도했다. 이후 이승복군 이야기는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 실렸고, 기념관과 동상이 세워지면서 당시 반공교육의 상징이 됐다.
그런데 1992년 김종배가 ‘이승복 신화는 조작되었다’는 기사를 쓴 뒤, 1998년 8월 9일 언론개혁 시민연대 김주언 사무총장은 서울 시청과 부산 역에서 이승복 기사에 대한 ‘오보전시회’를 열었다.
한마디로 ‘반공시대의 상징적 신화를 조선일보가 조작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가 두 사람을 명예훼손으로 고소, 재판이 형사 1·2심을 거쳐 14년 만에 대법원에서 ‘조선일보의 보도가 사실’이라는 최종 판단을 내린 것이다. 국토의 남북 분단과 이념의 날카로운 대립도 서글픈데, 이처럼 우리 현대의 역사마저 뒤틀리고 갈기갈기 찢어지는 아픔을 보는 한 국민으로서 분노와 통탄을 금치 못한다. 이는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이나 일부 세력들이 아무리 역사를 함부로 만들거나 지워버리려 해도 성공할 수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남·북 분단 후, 북한은 물론, 우리 사회에서조차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하려는 시도가 점점 거세지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특히 장기 집권의 독재를 이유로 건국의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국가 재건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역사 지우기와 부정이 극심하다.
민주화가 아무리 우리 시대의 중요한 가치라지만, 대한민국의 건립과 생존보다 앞설 수는 없는 일이다. 이미 이승만 대통령의 송수탑(頌壽塔)이나 동상 등 유물은 파괴됐고, 경제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박정희 대통령의 자취도 지워 없어졌거나 왜곡됐다. 사실 두 대통령은 후일 민주화의 선봉이라고 자처하는 우리의 어느 대통령보다 훨씬 청렴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역사는 억지로 만들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며, 마음대로 지워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 대통령의 이름과 역사를 지워버리면서, 자기의 역사만, 자신들만의 역사만 기억해주기 바라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며, 사리에도 맞지 않다. 그래서 불행했던 어린 이승복군의 역사와 그에 대한 분쟁과 판결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역사의 무서움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이것은 이승복이란 불행한 사례를 넘어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를 함부로 부정하거나 왜곡 조작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더욱 깊이 일깨워 준다.
[조선일보 2006-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