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성주호-시대 역행하는 보험업법 개정안
[헤럴드 포럼]시대 역행하는 보험업법 개정안
- 성주호 (경희대 경영대학 교수) -
IMF 이후 우리 금융시장은 선진 금융기법 정착과 금융전문가 육성에 힘써왔다. 그러나 재정경제부가 최근 마련한 보험업법 개정안은 금융전문가를 육성 발전시켜야 한다는 시대적 당위성에 상당부분 역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험산업의 선진화를 추구하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공히 인정되는 금융전문가란, 계량적 방법론을 활용해 금융시장의 장단기 환경 변화를 사전적으로 추정함으로써 보험사가 향후 부담하게 될 총체적 리스크를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보험계리사(actuary)를 의미한다.
금융 겸업화와 글로벌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국제 금융시장에서도 최근 그 역할은 더욱 확대되고 업무는 전문화되고 있다. 아울러 보험계리사가 되기 위한 시험과정 및 윤리규정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대폭 강화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보험업법 개정안 내용 중에서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우선 선임계리사(Appointed Actuary) 제도의 폐지를 언급할 수 있다. 이 제도는 보험계리업무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보험상품 개발의 자율성을 부여하기 위해 2003년 5월 보험업법에서 자격요건, 업무범위 등을 규정함으로써 새로 도입됐다. 즉 보험계리업무의 대표적 책임자이며, 더 나아가 보험전문가 집단의 오피니언 리더로서 그 사회적 책무를 부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이 이러한 순기능에 대한 평가를 유보한 채 겨우 3년밖에 시행되지 않은 선진제도를 별다른 근거 없이 폐기처분한다는 것은 논리적 합리성을 견지하기 힘들다. 정부 당국은 최근 근대적 생명보험사의 효시인 영국의 에쿼터블 보험사의 파산 원인 중 하나가 영국 선임계리사의 절대적 권한에서 비롯된 도덕적 해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우리의 선임계리사는 영국처럼 절대적 권한이 부여된 것은 결코 아니며, 더욱이 개정된 영국 제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처럼 선임계리사가 경영진에 전문적 의견을 개진하는 방향으로 권한이 축소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선임계리사제도는 도입 단계에서 이미 상당부분 역기능을 배제하고 순기능을 강조해 도입됐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결국 금융감독의 국제적 정합성 확보 차원에서 도입된 선임계리사제도는 향후에도 그 순기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과제가 논의의 중심이 돼야 한다.
또 개정안을 살펴보면 보험계리업무에 대한 정의를 현행 '기초서류의 내용 및 배당금 계산의 정당성 확인'에서 '책임준비금의 적립 및 계약자 배당금 배분 등에 관한 업무'로 그 업무범위를 축소 변경한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법적 정의는 그 내용의 규범성을 뛰어넘어 전반적 금융환경의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다. 따라서 법 차원에서 업무 영역을 정의할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보험계리 핵심 업무인 보험상품 개발 업무를 보험계리사가 아닌 사람도 가능할 수 있다는 여지를 부여한 점은 분명 보험계리업무의 역사성과 시대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기초서류의 내용 확인 업무는 신규 보험상품 개발 및 수정 과정에서 요구되는 전통적인 보험계리 전문영역이기 때문이다.
금융통합이 가속화되고 금융상품이 다양화되고 있는 국제적 변화추세를 반영해 보험계리업무의 범위도 다양성과 전문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개정안이 수정돼야 할 것이다.
결국 이번 개정안에 담긴 선임계리사제도 폐지와 보험계리업무 범위의 축소는 그 동안 꾸준히 추진해온 금융자율화, 국제적 정합성, 금융전문인 양성 등 정부 당국이 역동적으로 수행해온 정책 취지와 상당부분 괴리가 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정부 당국은 이런 점들을 충분히 고려해 합리적인 수정안을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필자약력>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졸업, 동 대학원 계산통계학 석사 ▶영국시티대 대학원 보험계리학 박사 ▶홍익대 상경학부 금융보험 조교수 ▶경희대 경영학부 교수(현재)
[헤럴드 포럼 2006-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