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미술대학 설립 40주년 기념 특별기고


동문특별강좌 윤태석-미술대학 설립 40주년 기념 특별기고

작성일 2006-07-14
=== 경희문화의 뉴 리더 《미술대학 동문회》===
“경희조각(彫刻)동문회 탐방”

윤태석(미술87/ 42회, 미술대학 동문회 기획위원)

<비전의 미술대학 40년을 리드한 경희조각 동문회>
경희조각(동문)회를 거론하기 위해서는 미술대학 설립의 역사를 짚어보고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학제개편의 과도기를 거쳐 미술학부, 예술학부, 미술대학 등의 명칭 변경이 있었지만 개설과정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출범이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75년은 미술대학이 이미 여섯 번째 졸업생을 배출했던 해(설립 1966년)로 당시 미술계는 화가와 조각가의 양적 비례가 화가중심에서 서서히 균형을 맞춰가기 시작하던 때다.
이 무렵 비로소 미술대학에 조소전공이 개설되기에 이른다. 다른 전공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은 출발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연유로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미술대학 졸업생 중에 입체작업을 하는 이를 찾기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개설 이후로도 당시 사범대학 졸업생의 교직진출은 필연과도 같았다는 점과 학제의 특성상 2학년 진급 시 전공을 선택해야하였는데 당시의 열악한 여건과 맞물려 그 명맥을 잇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79년부터 몇 년의 공백기를 맞게 된다.
이후, ‘88서울올림픽 등에 기인한 국가적인 경제 활성화 분위기가 미술에 까지 미쳐 국내조각계가 상대적인 호황을 누리기 시작하던 1987년 미술대학에 조각전공은 재개설되게 된다.
경희조각회는 동문조각회라는 차원보다는 재학생 전시 동아리의 개념으로 당시 3학년이었던 이정근, 김성필, 이길래, 최문희 동문에 의해 창립되기에 이른다.
경희조각회의 창립은 열악한 환경에서 출발한 조소전공에 결과적으로 큰 지지대 역할을 해주었으며 이는 곧, 미술대학 발전과도 직결되었다고 하겠다.
창립당시 경희조각회의 뒤에는 지도교수님인 이종각교수와 조소과에 출강 중이었던 국내최고수준의 강사진[김영원(홍대 미대교수), 김인겸(베니스비엔날레 한국대표작가)] 등이 있었다.
동문으로는 프랑스 유학을 거쳐 인천미술협회 조각분과 이사를 역임한바있는 정수모 동문과 카셀도큐멘타 등 세계적인 미술행사에 한국대표로 참여하며 국제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던 육근병 그리고 이미 행위예술과 설치작업으로 한국미술계에 상당한 지명도를 확보하고 있었던 신영성 등이 있었다.

< 미술대학 동문회의 주도적 역할 - 「경희조각 동문회」>
이러한 환경 속에서 경희조각회의 창립은 어쩌면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베니스비엔날레 및 카셀도큐멘타 한국대표작가 출품, 미술대전 국무총리상 수상, 월전미술상 수상, 구상전 대상 수상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미술대학은 타 대학에 비해 배출인원이 적어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미술계에서 면면히 그 역할을 해왔다.
이는 곧 경희미술인의 강인한 인내력을 기반으로 한 질긴 생명력을 의미한다 할 것이다.
‘88년 서울올림픽당시 올림픽조각공원에 지도교수인 이종각 교수의 대형작품이 선정되면서 당시로서는 다소 무리가 따를 걸로 염려되었던 모형 및 청동주물제작에 직접 참여하여,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Mass에 대한 자신감과, 기법에 있어서의 기술력축적 등 조소과 전체로 봐서도 큰 발전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런 노력으로 얻게 되었던 소기의 성과는 얼마 되지 않아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실질적으로 후배들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전공출신의 동문들이 전무한 상태에서 자신의 작품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공모전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던 이정근 동문(현 협성대 미대교수) 등 학부 및 대학원생들은 중앙미술대전(장려상 및 특선), 대한민국 미술대전(특선 및 입선), 동아미술대전(동아미술상, 특선 및 입선), 청년미술대상전(우수상, 특선 및 입선), 전국대학미전(금상)등에서 유래 없는 성과를 보여주었으며 이는 어느 학교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결실이었다.
이러한 배경을 근저로 1990년부터 1992년까지 3회의 경희조각회 회원전을 가졌으며(동숭아트센타, 토탈갤러리, 후인갤러리), 1998년 제4회 경희조각전이「刻 조각전(부제 ‘새로운 철기시대’)」으로 변경개최(덕원미술관)되었다.
한편, ‘99경희조각전은 경희대학교 개교50주년 기념전(종로갤러리)으로 대체 개최되었으며 2002년도에 있었던「아름다운 만남전(인사아트프라자)」과 2004년의「익숙한 자리 전(제일은행 기획초대전)」은 교강사가 함께 또는 이슈가 중심으로 진행 등 보다 발전적인 방향을 제시하였다.

< 경희문화의 새로운 도약과 미술대학 동문회 >
이제 경희조각은 ‘96년 우리학교 부설 현대미술연구소의 설립으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주요회원이 입체, 설치 및 이벤트의 제3분과에서 연구원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대학원에 재학 중인 다수의 회원은 연구조원으로 연구형조형물작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 ’96과 ‘97년에는 분당제생의료법인이 의뢰한 연구과제물(조형물 4건) 수행 작업과 논산시가 의뢰한 논산공설운동장 성화대 제작·설치 등 여러 연구프로잭트사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는 조각의 사회적 역할과 현장에서의 미술을 사전에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신도시 건설부지로 예정된 천안시에 대규모의 미술관을 가지고, 동문과 재학생들에게 조각의 생생한 현장과 미술계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이종각교수님의 조소전공에 쏟아온 깊은 애정이다.
모교의 뜰에 있는 “7선녀상”이라던가 “밝은사회탑” 등을 조성하신 이교수님은 경희문화의 개척자중의 한분이셨다고 생각한다.
이제 경희조각은 새로운 시기를 맞고 있다.
이종각교수의 퇴임과 이를 이은 신임 교수가 이끌어갈 미술대학 조각전공은 현대미술의 거친 공기를 흡입하며 경희문화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나아가야 할 숙제를 앉고 있다.
또한 한국 근현대 화단 최고의 작가로 미술대학에서 재직하셨던 고 최덕휴교수님이 퇴임 후 기증한 역작 100여점이 계기가 되어 착공하게 된 미술관은 미술대학은 물론이거니와 경희문화의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할 목적으로 개관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는 명실공히 국내최고의 미술대학으로 발돋움하는 커다란 계기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끝으로 경희조각회는 미술대학 설립 40주년을 맞는 올해 동문회에서 야심차게 기획하고 있는 40주년 기념전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이러한 활발한 활동으로 한국현대조각의 새로운 변화를 꾸준히 모색해 나갈 것이며,「이후전」,「회토전」,「신구회」,「청·자유전」,「CHAOS전」,「NON-STOP전」,「아트 서커스전」등 여러 동문그룹과 함께 경희미술이 더 나아가서는 경희문화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